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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잠잠이 Oct 07. 2021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문득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책이 생각 난 날

책 제목: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작가: 공지영

출판사: 오픈하우스 2008.03.24


요즘

너무 책을 뚝딱,

읽어치운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꼭꼭 씹어서

삼키고

담아두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마치

레모네이드를 마시듯

생과일 딸기주스를 마시듯


때론

아이스 라떼를 마시듯,


그렇게

후루룩,

마셔버린다.


책 편식도 더 심해졌고

한눈에 덥석,

골라버리는

증세는 더 심해졌다.


그런데

이 책은 자꾸

멈칫거리게 만든다.


'문가에 간신히 도착한 바람처럼 서성거리게'만든다.


공지영은 나를 슬쩍,

울리는 비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초창기에 그랬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녀가

다시,

자꾸 나를 두드린다.


*후기

_위의 글은 몇 해전에 메모해둔 것이다.

_오늘은 2021년 10월 7일 비 오는 목요일 아침


 처음 공지영이라는 소설가를 알게 된 <무소의 뿔처럼 가라>부터 <고등어>를 비롯해 <인간의 예의> 등 한동안 그녀의 책들을 가리지 않고 읽었다.

그러다 <봉순이 언니> 이후부터 얼마간은 아예 그녀의 책을 읽지 않았다.


 다시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어느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즐거운 나의 집>부터다.

그녀의 삶과 아이들의 이야기까지 픽션에 버무려 진솔하게 써 내려간 그 소설은 유쾌했지만 슬픔이 녹아있기도 해서 감정을 파고를 일으켰다.


 그 후 <괜찮다, 다 괜찮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너를 응원할 것이다> 등 공지영 작가의 에세이도 다시 사서 읽기 시작했다.

 최근 발표한 그녀의 신작들은 읽지 않았다.


그런데 어젯밤 문득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너를 응원할 것이다>가 계속 맴돌았다.

둘째 아이가 시험을 보고 와서 펑펑 우는 것을 보고 위로 말고는 해 줄 게 없어서였는지 모른다.


 워낙 자유로운 영혼이라 시험기간이라고 열심히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평소에도 또래들처럼 학습시간이 많지도 않고 거의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친구들과 고민상담을 나누며 수다 떨며 음악 듣는 것을 즐기는 평범한 열여덟 살이다.


 그런데 이번 중간고사 때는 특정 과목 2과목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한다. 미리 하지는 않았으나 우리 J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고 심지어 전날 밤까지 새우며 마무리를 했다고 한다.

다른 고등학생들에게는 흔한 풍경일 수 있으나 둘째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나는 어제 새벽에 일어나서 거실 탁자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둘째를 보자 기특하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벼락치기를 한다고 해도 고등학교 시험은 점수로 반영되기는 어렵다.

그래도 J가 기대할까 봐 걱정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J는 등교하기 전 배웅하는 나에게

"엄마, 나 시험 잘 보고 싶어!"라고 한다.


 나는 너무 기대하지 말아라,

결과는 상관없다,

등등의 많은 말들을 삼키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네가 공부한 내용만 나오면 좋겠다."

그러자

"응, 엄마, 나 진짜 열심히 했거든!"

마치 초등학생 때처럼 순한 표정으로 웃는다.


 "그래, 알지, 알지!

 그래도 잘 보면 감사하지만 못 봐도 괜찮아."

나는 끝내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평소에도 공부 압박을 주지도 않고 성적 결과에 대해서도 연연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둘째는 시험 때마다 우울해한다.


 공부를 안 해도 시험기간은 무겁고 힘든 시간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혼신(!)을 다했다고 생각하니 결과에 대한 욕심이 생기나 보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어느 정도 결과가 예상됐기에 J가 너무 실망하지 않기만을 바랬다.


 그런데 시험 보고 와서 채점을 하고 혼자 많이 울었나 보다. 

나한테 속상하다며 훌쩍이며 왔을 때는 이미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시험 못 봐도 괜찮고 공부 못해도 괜찮은데,

아직 고등학생인 둘째는 그게 현실적이지 않은 말이라 생각한다.


시험공부를 안 하고도

"엄마, 시험 잘 보고 올게요."라고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아이다.

대체 뭘 믿고 저리 당당할까?

무슨 초긍정마인드인가, 싶을 때도 많은 J다.


 그런 둘째가 이번에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자신감을 잃은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우는 아이 등을 쓰다듬어 주고 "괜찮다, 괜찮다"라고 말하며 기다려주는 수밖에는 없다.


그래도 이런저런 말을 가볍게 해 줬더니 J가 갑자기 너무 울어서 배가 고프단다.

다행이다.

둘째는 마음이 상하면 입맛도 없는 아이라 허기를 느낀다는 것은 좋은 신호다.

 

 빙수부터 곱창, 떡볶이 등 먹고 싶은 것을 한참 고민하다가 우리는 저녁 겸 떡볶이와 주먹밥 등을 시켜먹었다.

 그리고는 꼼지락거리다 둘째는 밤샘한 잠을 보충하느라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부터 비도 내리고 눈이 퉁퉁부은 J는 오늘 또 시험이 있는 날이라 우울해하겠다, 싶었다.


그러나 웬걸,

둘째는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등교 준비를 하고 방에서 나왔다.

"엄마, 나 눈 부었는데 그래도 괜찮지 않아?" 한다.


 시험 때도 화장을 해야 하는 J는 오늘은 한 듯 안 한 듯 아주 연하게 했나 보다.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

 나는 약간 과장되게 반응했다.


 둘째는  "그래도 붓긴 부었어."라면서도

가방을 메며 "잘 다녀올게요."라고 씩씩하게 인사를 한다.


 역시 시험 전날 공부를 안 하고 푹 자니, 둘째는 다시 발랄 모드로 돌아왔다.

그래,

그래도 다행이다.

진심으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삶을 살든 응원한단다!

 

그렇지만 둘째가 혼자 해도 안된다는 그 과목이라도 학원이나 과외를 가는 건 어떻냐, 고

대화해봐야 하나.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 고 해야 하나.


그런 욕심도 슬쩍 다시,

고개를 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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