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얼마 전 휴가로 프라하에 다녀왔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쉬었어요. 2학기는 새로운 과목을 맡으며 쉼 없이 일했고, 학기가 끝나자마자 계절학기 강의를 하였죠. 이번 겨울 한 번의 독감과 또 한 번의 감기에 걸렸고 몸이 삭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뿌듯했어요. 눈을 뜨고 감기까지 하루의 모든 시간을 일에 쏟아붓는 저의 날들이 꼭 남들이 이야기하는 ‘갓생’ 같았거든요. 몸은 부서질 것 같고 감기에 골골거려도 내심 좋았어요.
“바빠서 아무것도 못 찾아봤어.”
괜히 으스대며 말하곤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많은 비용을 내고 여행 가지만 정보를 찾아볼 틈도 없는 바쁜 나에 조금은 취해 있었어요.
프라하의 첫인상은 조금 밋밋했어요. 지도의 축척이 잘못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도에서 멀게만 느껴졌던 곳들이 걸으면 금방이었거든요. 한 손에 쏙 들어온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작은 도시였어요.
저는 새로운 걸 좋아하는데 이 도시에서 새로운 자극은 금방 동이 났어요. 걷다 보면 본 곳, 본 곳, 본 곳. 아침에 일어나서 지칠 때까지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돌아갈 비행기는 정해져 있고, 그렇다고 다른 도시를 다녀오자니 나의 의욕은 한국에서 소진하였고.
그래서 잠을 잤어요. 실로 오랜만에 늦잠을 잤습니다. 자고 싶은 만큼 자다 깨서 뒹굴거리다 점심쯤 나가 밥을 먹었어요. 어슬렁거리며 도시를 걷다 좋아하는 맥주를 콸콸 마시고 또 해가 지면 들어와 잠을 잤어요.
그렇게 먹고, 마시고, 쉬는 나날을 보내던 중 체코에 사는 친구가 물었습니다.
“왜 한국에서 살기로 결정했어? “
한국을 떠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주 생각했던 터라 대답했죠.
“난 이 언어로 나를 너무 잘 표현할 수 있어서 이만큼 섬세하게 사용할 수 없는 언어를 쓰는 곳에서 살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때부터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나는 왜 한국에서 살기로 했지, 한국에서의 삶은 어떻지?
바쁘지. 잠을 적게 자고 삶을 ‘갈아 넣어 ‘ 공부하고 일하는 것이 미덕인 곳이지. 미래가 불안하고 불안을 떨치기 위해 일하고, 일하는 것으로 불안을 잠재워. 그러면서도 행복하기 위해서도 열심히야. 해야 할 것도, 보아야 할 것도, 즐겨야 할 것도 한가득이야.
마치 실패가 없어야 하는 해외여행처럼. 프라하에 간다면 꼭 봐야 할 것, 먹어야 할 것, 사야 할 것이 정해져 있고 그걸 놓치면 안 되는 그런 여행과 같은 삶.
그런데 프라하에서 나의 행복은 ‘꼭 해야 하는 것’엔 없었어요.
넓은 잔디밭을 오프리쉬로 뛰어노는 강아지들
맥주를 양껏 마시고 걷던 노란 불빛의 밤거리
먼 타국에서 만난 친구가 초대해 준 저녁 식사
잔뜩 낀 먹구름이 물러가고 나타난 파란 하늘
최근 몇 달을 합친 것보다 일주일 남짓한 프라하에서의 시간 동안 더 많이 웃었어요. 깔깔 소리 내어 웃는 것 말고도 수많은 작은 순간에도요. 예를 들어 주문을 하거나 계산을 할 때 점원과 눈을 마주치며 말할 때, 트램과 길에서 만난 사람과 인사하면서요.
그러다 한국에 왔더니 웃음을 찾게 되더라고요. 허나 쉽지 않았어요. 지하철의 무표정한 사람들. 명절에 친척을 만날 걸 상상하며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 카페에 앉아 이야기하며 인상 찌푸리는 사람들.
어느새 자연스럽게 저도 떠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더군요. 그간 밀린 일을 해야 한다고,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야 한다고 여독에 자꾸만 잠드는 스스로를 채근하고 있었어요.
솔직히 ‘갓생’이 즐겁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프라하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았던 것처럼 새로운 삶의 형태를 발견해야 할 것 같아요.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삶이요. 그러지 않으면 분명 어느새 스스로를 갈아 넣으며 일하며 뿌듯해할 게 분명해요.
이런 마음을 담아 새해를 맞아 다짐을 해볼까 합니다.
올해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일이 아닌 다른 것으로 다스리고 싶어요.
가까운 이들에게 더 많은 웃음을 안기고 싶어요.
더 많이 웃고 싶어요.
우리 같이 웃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