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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Feb 27. 2024

[한국의 신화] 상처를 안고 나아가기

※본 글은 명대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여러분은 신화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많은 분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릴 겁니다. 수많은 콘텐츠에서 그 신화를 다루고 있으니까요. 대게 신화에서 신은 저 하늘 위, 인간 세상과는 다른 세계에 있습니다. 바다의 거품 속에서 생겨났거나, 아버지의 두개골을 가르고 태어나는 것처럼 태생부터 인간과는 구별되죠. 그들은 인간의 생김새나 성격을 닮았지만 분명 인간과 다른 존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7주간 제가 이 지면을 통해 말씀드릴 신화 속 신은 조금 다릅니다. 사람과 아주 많이 닮았거든요. 물론 어머니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난다거나, 꽃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은 남다른 면모도 있지요. 그러나 삶의 순간은 우리와 닮아 있습니다. 편부모 가정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또래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가난하여 끼니를 걱정하기도 합니다. 한편 우연히 베푼 친절로 선물을 받기도 하고 가족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기도 하지요. 상처받고 성장하는 모습 때문일까요? 신화를 읽다 보면 신이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이렇듯 우리와 닮은 구석이 많은 신들을 통해 지금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최근 콘텐츠를 보며 지금 실패와 불안, 극복되지 않는 상처가 설 자리가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주인공이 과거로 회귀하여 멋지게 복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자신의 운명을 뒤바꾸고 복수하는 서사는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습니다. 이렇듯 최근에는 주인공이 과거로 회귀하여 과거의 상처를 뒤집거나, 태생이 무적이어서 상처를 입지 않는 서사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사가 내포하고 있는 ‘내가 그때 그렇게 했다면’, ‘내가 조금 더 강했다면’이란 생각은 우리를 둘러싼 많은 문제가 개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음을 전제합니다. 그러나 우린 드라마 속 인물처럼 과거로 돌아가 타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거나, 나의 잘못을 수정할 수도 없습니다. 또, 상처받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최근의 대중 서사가 점점 우리의 삶에서 멀어져 간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한편 한국의 신화는 세상이 우리에게 상냥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함경도에서 전하는 「창세가」를 살펴볼까요? 세상이 만들어지고 미륵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석가가 나타나 인간 세상을 두고 내기를 하자고 합니다. 두 신은 꽃을 피우는 사람이 인간 세상을 차지하기로 하고 내기를 시작합니다. 미륵의 꽃은 활짝 피었지만 석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욕심이 난 석가는 미륵의 꽃을 가져와 자신이 피워낸 꽃인 척합니다. 그 사실을 알아챈 미륵은 네가 인간 세상을 다스리라며, 네가 다스린 탓 인간 세상엔 온갖 죄악이 생겨날 것이라 말합니다.


세상의 시작을 담은 신화에서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신이 얼마나 부정한 존재인지를 말합니다. 또 이 세상의 온갖 죄악이 생겨난 것은 저 신 때문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죽이고 세상을 차지한 것처럼 체제의 전복이 일어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전하는 것이지요. 세상은 시작부터 이러하였고 그러니 아마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요.


드라마에서는 모든 고난이 주인공의 선택으로 반전됩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고난을 개인이 야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나의 선택으로 생겨나지 않은 불안도 있고, 내가 행동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상처도 분명 존재합니다. 신화는 이 점을 꼬집어 네가 힘든 것, 네 삶에서 자꾸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세상이 이렇게 생겨먹은 탓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픔을 딛고 살아가보자고 하는 겁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요.


이 이야기는 나에게 닥친 고난을 조금 더 의연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을 곱씹으며 나의 잘못을 찾기보단 현재를 인정하고 더 잘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끔 하니까요. 혹 모든 게 내 탓인 것 같을 때 신화 속 세상을 떠올려 보기를, 우리와 닮은 신의 이야기가 독자분들께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https://news.mj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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