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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Feb 29. 2024

[파묘] 화림은 진짜 무당 같은가?

연구자가 본 <파묘>

파묘를 보고 왔습니다. 오컬트 장르를 힘들어하는 편인데, 한국형 오컬트라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더군요. 게다가 <파묘> 개봉 이후 한국의 굿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동시에 잘못된 정보가 전문 지식처럼 퍼져나가는 걸 보며 서둘러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영화가 개봉하고 김고은 배우의 무당 연기,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에 대한 깊이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신화 연구를 하며 굿을 보러 다닌 가락이 조금 있기에 저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정말 무당 같은가?" "무속을 제대로 다루었나"였습니다. <파묘>를 보고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지만 오늘은 먼저 화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화림은 젊지만 아주 잘 나가는 무당입니다. 컨버스화를 신고 르메르를 입는 MZ 무당이기도 하지요. 그와 더불어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은 아마 자신의 얼굴에 숯 칠을 하던 장면 그리고 돼지를 연거푸 베던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출처: <파묘> 1차 예고편

화림은 굿을 시작하고는 칼로 자신의 종아리와 뺨을 베고, 목을 찌르고 또 불 속에 자신의 손을 넣습니다. 그러나 몸에는 상처가 남지 않고 손에도 그을음만이 남았을 뿐 화상을 입지 않죠. 왜 자신을 상처 내려하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왜 다치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행위는 바로 자신의 몸에 신이 들어왔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작두를 타는 것도 같은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작두를 타기 전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작두의 날을 갑니다. 그리고 작두로 종이를 베며, 날이 얼마나 날카롭게 서있는지를 보여주지요. 그리고 그 위에서 올라 서고, 껑충껑충 뛰지요. 날카로운 칼 위에서 하나도 다치지 않는 것이 말이 되지 않기에, 말도 안 되는 행위로 신이 무당의 몸에 깃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화림 또한 칼과 불로써 신이 자신의 몸에 내려왔음을 보여준 것이고요.


자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모든 무당은 신내림을 받을까요? 화림처럼 굿에서 신에게 빙의할까요?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얼마 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파묘>를 보고 관심이 생겨 '남해안 별신굿'을 보러 간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 글을 보고 잠시 웃었어요. 그분은 아마 굿을 보러 가서 크게 실망하거나, 새로움에 감탄할 겁니다. 남해안 별신굿의 무당에게서 화림과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테니까요.


우리는 무당 하면 봉길처럼 거부할 수 없는 신병을 앓고, 신내림을 받고, 신에 빙의하여 점을 보고 굿을 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모든 무당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무당의 지역적 특색이 많이 약해졌습니다만, 전통적인 틀에서 보자면 화림은 한강 이북 지역의 굿 그중에서도 황해도굿에 해당합니다.


출처: <파묘> 스틸컷


황해도굿은 과거부터 미디어의 많은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영화 <만신>의 주인공인 故김금화 만신을 통해 이른 시기부터 예술성이 높다고 평가받았습니다. 그리고 매우 자극적이거든요. 무당이 신의 말을 전하는 것은 물론 굿을 할 때면 작두 위에 올라타 춤을 추고, 돼지와 닭을 죽이거든요.

과거에는 정말 굿을 하며 산 돼지를 죽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도축법 때문에 돼지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죽은 돼지를 통으로 가져오는 정도로 대체하거나 닭을 잡는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화림이 하는 대살굿은 무덤을 파며 나오는 나쁜 기운인 살(殺)을 사람이 아닌 돼지에게 전가하기 위한 것이니 만큼, 과거였다면 아마 살아있는 돼지로 했을 겁니다.


이색적이기에 미디어에서는 주로 황해도굿이 다루어져 왔고, 그 결과 지금은 황해도굿이 모든 굿을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런 굿을 찾다 보니 점차 전국의 굿이 모두 황해도굿처럼 변해가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가 조금 씁쓸합니다.


김고은이 연기한 화림은 정말 무당 같이 보였나에 대해서도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니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김고은 배우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화림이 신과 귀신을 부르며 부르는 노래 즉 무가(巫歌)는 정해진 가사는 있지만 정해진 멜로디는 없습니다. 즉흥으로 부르기도 하나 대부분의 경우 선생님에게 배운 대로 부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규범화된 멜로디가 있습니다. 김고은 배우의 곡조는 뭐랄까, 저에게는 서울 사람이 배워서 하는 부산사투리처럼 들렸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너무 잘해요.

그러나 일꾼들이 묘를 파는 장면과 번갈아 나오던 돼지를 베는 김고은 배우의 모습에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영화이다 보니 훨씬 과장된 면모가 있지요. 그렇지만 엑스터시 상태를 정말 잘 표현했더군요. 오랜 기간 굿을 보고 연습했을 시간이 정말 잘 전해졌습니다.


덧붙여 <파묘>에서 장재현 감독이 무당을 참 잘 아는구나 하고 느낀 깨알 같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 '쪽진 머리'였어요.

이장하는데 각각 5억을 받는다는 이야길 하며 '화림이가 어떤 애인데 그 돈이 아닐 것이다. 더 많이 챙겼을 것이다'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지요. 그 외에도 광심언니(김신영 배우)의 체인이 잘그락 거리는 명품 가방, 화림의 외제차 등등 무당과 돈을 다루는 장면이 꽤 있었습니다. 무속은 신도 돈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만큼 아주 현세적이고 여러 부분에서 돈이 중요시되는데 그 점을 은근슬쩍 녹여낸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 광심언니와 자혜는 쪽진 머리를 하고 나타났지요. 굿을 할 때에는 5:5 가르마를 타고 쪽을 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평소에도 쪽을 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점이 녹아 있어 재밌었습니다.


무속 문화와 세계관에 대한 장재현 감독의 이해 그리고 김고은 배우의 연기에 무릎을 탁 치고 나온 영화였습니다. 오늘은 화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았는데요. 다음 글에서는 <파묘> 속 무속 세계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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