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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Mar 01. 2024

<파묘> 속 귀신은 왜 XX 할까?

연구자가 알려주는 <파묘> 속 귀신의 진실

제가 <파묘>를 보고 오길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한국형 오컬트'와 '무속인의 자문' 등등이 따라다니는 영화이니만큼, 영화를 먼저 보고 온 친구들은 이 영화가 얼마나 실제를 잘 반영했는지 궁금해했어요. 또 영화 속 귀신의 행동 중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파묘>를 보고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오늘은 친구들에게 받은 질문은 바탕으로 Q&A를 써보려 합니다. <파묘> 속 귀신은 왜 그랬던 것일까요?


▶ 질문 1. 한국 귀신은 왜 문을 열어달라 할까?

관에서 튀어나간 할아버지의 혼은 장손들을 찾아갑니다. 그리곤 갖가지 방법으로 문을 열어달라고 하지요. 박종순을 찾아간 귀신은 "아들아"하며 문을 열어달라고 하지요. 이장을 하는 것조차도 몰랐던 박종순은 그리운 아버지의 음성에 냉큼 창문을 열었다 아버지의 혼에게 죽임을 당하지요. 한편 박지용은 귀신에게 속아 문을 엽니다. 문밖에서 문을 열어달라 외치는 것이 귀신인 줄 알았는데, 창문을 열라고 한 전화 속 존재가 할아버지의 혼(귀신)이었던 점은 큰 반전이었죠.


무릇 귀신이라 하면 벽 따위 쉽게 통과할 것 같은데 굳이 굳이 창문을 열어달라고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한국의 민간신앙에서는 사람에게 부정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여럿 있습니다. 부정, 살, 잡귀 등등이 그것이지요. 재미있게도 이러한 존재들은 바로 '길'로 다닌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한 번쯤 보셨을 '장승'은 바로 길을 지키는 존재입니다. 마을의 외곽에 세우는 장승은 사람들에게 이정표 역할도 했지만, 근본적인 역할은 바로 마을 안에 부정한 존재/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길을 지키는 것이었지요.

장승처럼 외부와 내부의 경계에는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존재를 모셨습니다. 내부의 경계는 상대적인 것이니 마을의 경계엔 장승, 서낭당 등을 세우고 마을을 지켜달라 빌었고, 집에선 문의 신에게 부정한 것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 달라 빌었지요.

민간신앙에서는 초현실적 존재 또한 길로 다녔습니다. 그렇기에 마을에 경계를 만들어 막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드나드는 곳에 수호해 줄 존재를 모신 것이지요.


그렇다면 실내는요? 실내를 드나드는 방법은 문뿐만 아니라 창문도 있잖아요. 창문 또한 들어가고 나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어느 쪽으로 창문을 내느냐에 들어오는 것이 달라져 집안에 사는 사람들 운이 달라진다고 믿었을 만큼 창문 또한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던 거죠. 그렇기에 귀신 또한 창문으로 들고 날 수 있지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여러분들 제사 지낼 때 집의 현관문을 열고 지내지 않나요? 이건 조상님의 혼이 집 안으로 들어오도록 맞이하기 위한 것이랍니다. 초자연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인간이 다니는 길이나 인간이 통과할 수 있는 문이나 창문으로 다닌다고 믿는 것이지요.


<파묘>에서는 그런 점을 녹여 귀신은 창문을 열어달라 하고, 무당들은 귀신으로부터 봉길을 구하기 위해 병실의 문과 창문에 부적을 붙였던 겁니다.


▶ 질문 2. 한국 귀신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움직일까

관 속에서 튀어나간 할아버지의 혼은 순식간에 서울에 있는 손자와 미국에 있는 아들의 혼을 찾아갑니다. 귀신은 순식간에 이동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 걸까요?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초자연적 존재들은 길로 물리적인 자취를 남기며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는 한편 그들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자 그럼 여기서 한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여러분들 <파묘>에서 혼을 부를 때 화림이 부르던 경문(무가)이 기억나시나요? 한 인터뷰에서 3-4쪽에 달하는 경문을 어떻게 외웠냐는 질문에 김고은 배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문을 보면 스토리가 있어요. 자세히 보면, 처음에는 이제 여기가 어디고 이렇게 주소 이런 거 얘기하고 어디 박 씨가 어쩌고 저쩌고 얘기를 하다가, 오소 오소 떠들지 말고 오시라 오시라 뭐 때문에 못 오시냐 신발이 없어서 못 오시는 거냐 목이 말라서 못 오시는 거냐, 이런 식으로 그거에 대해서 막 나열을 해요
출처 : 씨네플레이(https://www.cineplay.co.kr)


경문의 초반부에는 여기가 어디인지를 알려준다고 말하죠. 무속에서 굿은 굿판에 부정한 것을 물린 후에 청신(請神), 다시 말해 신을 불러 모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신을 부를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바로 지금 굿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어디인지 말하는 것입니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여기가 어디인지를 말함으로써 신이 이곳을 찾아오도록 하는 것이지요.


신은 어디에 있을까요? 글쎄요. 한국의 신화에서 신은 수평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에 있기도, 지하나 천상과 같이 수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에 있기도 합니다. 여하튼 좀처럼 닿기 어려운 멀고 먼 곳에 있지요. 그럼에도 굿을 하는 곳이 언제 어디인지만 안다면 그들은 금방 찾아올 수 있다는 겁니다.


<파묘> 속 할아버지의 혼은 천도되어 신이 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에선 조상 또한 신과 같은 존재이니까요. 그들 또한 신과 같은 방법으로 움직일 수 있겠지요. 그렇다는 것은 다시 말해 혼 또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만 알 수 있다면 금방 찾아갈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제사를 집이 아닌 호텔에서 지내도 조상님이 찾아올 수 있는 것처럼요.


▶ 질문 3. 한국 귀신은 왜 장손만 해칠까?: 일본 귀신과의 차이

관에서 튀어나온 오니()는 보이는 대로 사람을 죽입니다. 화림이 말하지요. 일본 귀신은 한국 귀신과 달리 누구든 보이는 족족 죽여버리는 무서운 존재라고. 이렇듯 영화에서는 한국 귀신과 일본 귀신의 차이가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 둘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 귀신은 무자비합니다. 수색대가 기어코 야생곰을 찾아낸 것은 야생 동물이라면 아무나 보이는 사람을 해칠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것처럼 일본 귀신에겐 사람을 해침에 있어 이유도 자비도 없습니다. 이유 없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존재를 해치는 그런 존재이기에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피하려 합니다.


반면 한국의 귀신은 아무나 해치지 않습니다. 이유가 분명합니다.

집안에 납득이 가지 않는 우환이 자꾸만 일어날 때 사람들은 무당을 찾아갑니다. 그럴 때 자주 듣는 물음은 "집에 객사한 조상이 있냐?"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조상이 있냐?" 같은 것입니다. 조상 중 누군가가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기에 이승을 제대로 떠나지 못하였고, 그 한 때문에 자손을 괴롭힌다는 것이지요. 전통사회에서는 미혼과 객사는 '정상'의 삶에 도달하지 못하는 지표였으니까요. 이러한 이유로 이승에 한이 남아있는 조상이 있으니 조상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굿을 처방을 받습니다. 혼을 위로하여 저승으로 보내는 천도굿이나 영혼을 결혼시키는 저승혼사굿과 같은 것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조상은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해 자손에게 나쁜 일을 일으키고, 자손을 통해 그 한을 풀어냅니다.

어느 조상이 자기 원하는 게 있다고 자손에게 나쁜 일을 만들까 싶지만, 한국의 조상은 그렇더군요. 어르신들이 제사를 없애거나 줄이고 싶어도 조심스러워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혹 그랬다가 조상의 노여움을 살까 봐 그러한 것이겠지요.


<장화홍련전>이나 <아랑전설> 같은 것을 떠올려 보면 더욱 재밌습니다.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이 혼들은 자신을 죽인 사람을 직접 살해하지 않습니다. 대신 마을의 원님을 찾아가 자신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하지요. 원님이 몇 번이나 귀신을 보고 놀라 죽어도 그들은 굴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원님은 자신의 바람을 들어주기를 바라며 다시 또 원님 앞에 나타납니다.


한국의 귀신은 한이 크다고 하여 아무에게나 한풀이를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 자신의 곡절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한을 풀어줘야 할 의무가 있는 자손에게 나타납니다.


<파묘> 속 할아버지의 혼은 자신의 묘가 이용당했다는 것에 분노했을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해결해 달라고 장손들에게 자꾸만 나타났을 겁니다. 왜 장손이었냐고요? 박지용이 고모에게 말하듯 장손에게는 권리와 선택을 실행할 힘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외면하였기에 장손들을 찾아가 복수하고자 한 겁니다. 그러니 관 속에서 나왔을 때 화림과 봉길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지나치고, 장손의 집으로 향한 것이지요.


번외 질문 1. 화림을 구해준 할머니는 누구인가?

화림은 보국사에서 밤을 보내던 날 "할매요. 기분이 이상해."라고 하지요. 그리고 봉길을 구하고자 차를 나서려 할 때 손 하나가 화림의 어깨를 잡습니다. 또 오니가 화림을 쫓아오려 할 때 한 할머니가 오니를 막아서지요. 이 할머니는 누구일까요?


바로 화림의 몸주신이자, 화림의 할머니입니다. 지난번 글에서 썼듯 화림은 황해도 무당이자 강신무입니다. 강신무는 몸주신이라 불리는 신을 모십니다. 이 신의 종류는 매우 다양합니다. 길에서 지나가다 보면 '장군신당' 같은 표지판을 본 적이 있을 텐데요. 이건 몸주신이 장군신임을 뜻합니다. 최영장군이나 맥아더장군과 같은 장군을 모시는 무당도 있습니다. 또 옥황상제와 같은 신이 나 명성황후를 몸주신으로 모시기도 하지요. 그러나 대단한 존재만이 몸주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한국의 민간신앙에서는 조상도 죽으면 신이 있고, 조상을 몸주신으로 모시는 경우도 아주 많거든요.

또 몸주신이 한 명인 것도 아닙니다. 한 무당이 여러 명의 몸주신을 모시기도 합니다. 화림의 경우 가장 크게 의지하는 몸주신이 바로 할머니신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할머니신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나가려는 화림을 만류하고 또 그를 지키기 위해 오니의 앞을 막아서기도 한 것이지요.



이상으로 친구들이 해준 질문을 바탕으로 몇 가지를 적어보았습니다. 혹시 또 궁금한 점이 있나요? 댓글로 남겨주세요. 제가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답을 준비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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