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아니 호랑이가 뒷산에 살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태백산맥이 흐르는 강원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마을을 위한 굿을 할 때 ‘범굿’을 합니다. 호랑이의 가면을 쓴 무당이 닭을 잡아먹는 흉내를 내며 굿판을 휘젓고 다닙니다. 사냥꾼 역할을 맡은 무당이 이 마을에 옛날에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이 있어 이렇게 마을굿(별신굿)을 할 때면 호랑이가 나타나기도 했다며, 저 호랑이를 잡아야 무탈할 것이라 합니다.
사냥꾼은 호랑이를 쏘아 잡고 가죽을 벗깁니다. 아, 진짜 가죽은 아니에요. 호랑이 가면을 가죽 인 셈 치는 거지요. 그 가죽을 태워 마을 사람들의 평안을 빕니다.
호랑이가 뒷동산에 살던 시절, 호랑이는 종종 마을을 찾아왔습니다. 아마도 배가 고파서였겠지요.
닭, 돼지, 소. 가축을 잡아먹었습니다.
물론 사람도 먹었어요.
1980년대에 조사된 자료들을 보면 경험담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어렸을 때 밖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옆 방에 누워있던 아이를 호랑이가 물고 갔더라.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을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도 떡을 팔고 돌아오던 길에 호랑이를 만나잖아요. 떡을 빼앗아 먹은 것으로도 모자라 팔, 다리 그러다 꿀꺽 어머니를 먹어버리죠.
끔찍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다시 범굿으로 돌아가보죠.
이상한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이 마을에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이 있어 굿을 하면 호랑이가 오곤 한다’는 부분이요.
옛날에 물려 죽은 사람이 있는 것과 호랑이가 찾아오는 것 사이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그냥 호랑이 서식지가 근처에 있어서 자주 나타난다는 건 아닐까요?
옛날 사람들은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호랑이에게 잡아 먹힌 사람의 영혼은 저승에 가지 못하고, 호랑이의 수하가 된다고요. 그렇게 호랑이를 졸졸 따라다니다 호랑이가 “배가 고프다. 사람을 잡아먹어야겠어. 네 가족은 어디 사냐?”물으면, 가족이 있는 곳으로 호랑이를 데러 간다고요.
그래서 호식당한(호랑이에게 잡아먹힌) 가족이 있는 집안과는 결혼을 꺼려했다고 합니다. 언제 호식당한 혼이 호랑이를 데리고 집에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마을 사람들도 두려웠던 것이겠죠. 그렇게 호랑이가 마을로 내려왔다가 우리 집에 오면 어쩌지.
그러니 애초에 그런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호랑이를 쏘아 죽이고, 그 가죽을 태워버리는 의식을 치렀던 겁니다.
나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은, 죽음의 고리에 대한 두려움. 죽음으로 시작될 사람들의 혐오와 배제.
그 모든 것들을 막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의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