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단식을 하면서 물가에 예민해졌다. 전에는 어림잡아 장을 보고, 대충 1~2만 원 정도 초과해도 '어떻게 딱 맞춰 사냐?' 하면서 넘겼던 것들이, 결코 무시 못할 금액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번 딱딱 맞춰서 장을 보는 건 아니다. 단지, 지금은 초과했을 때 남은 금액으로 어떻게 생활을 할 것인지 고민해 본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오렌지 8~9개에 9,900원 하던 것이 요즘은 같은 값에 6개밖에 살 수 없다. 1,500원 하던 애호박은 언제부터인가 2,500원에 나오고 있고(엊그제 2,800원짜리도 봤다), 계란 4,500원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됐다.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볼 때마다 예산을 최대한 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어떤 날은 정말 쉽지가 않다. 원래 사려던 식재료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들을 보면 메뉴를 바꿔 장을 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초과되는 날에는 신용카드를 쓰기도 한다. 예산에 맞춰서 지출하는 부분에 아직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쓰고 있는 게 싫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주말에는 혼자만의 결정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 즐거운 주말을 보내려면 세 식구가 서로의 욕구를 반영하여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봐야 한다.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매끼 외식과 카페 이용, 야식까지 먹던 우리 가족은 이제 외식과 집밥을 믹스한 주말 식사를 하고 있고, 야식을 원하는 경우(꼭 배민에 3만 원 넘는 거 시키더라ㅡㅡ;;) 저녁 식사를 간단하게 하거나, 집밥을 한 끼 더 해 먹는 걸로 정한다. 카페는 가지 않는다. 대신 아샷추(복숭아 아이스티에 샷 추가), 제티 같은 것들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다른 집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 집은 우리 가족의 스타일에 맞게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식비 잔액을 공유한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돌발 지출이 있거나, 열심히 소비단식을 해도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지는 것 같지 않을 때에는 잠깐이지만 '확 다 써버려!' 싶을 때도 있다. 합리화의 덫에 걸리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임을 인정하기에 고비가 올 때는 최선을 다해 넘겨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지금 애써서 되는 수많은 것들 중 한 두 가지는 저절로 되는 때가 오겠지. 내가 만들어놓은 통제 범위 안에서 절제하며 선택하는 법을 체득하는 시간은 분명 단단히 쌓여가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러니까,
나는 분명 노력한 만큼 나아질 테니까,
지금 만원에 쩔쩔매는 건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