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놉> 해석과 감상
<놉>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온전히 성장하지 못한 두 인물에 집중합니다. 바로 엠과 주프입니다.
영화 속에서 엠과 주프는 서로 우호적으로 말을 주고받는데, 둘 모두 성장하지 않은 내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모두 성인이지만, 주프는 자신이 만든 내면이 영구히 성장하지 않게 견고한 테마파크를 만들어 자신조차 상품화했고 엠은 자신을 셀링포인트를 내세우지요. 이러한 둘의 내면은 각각 ‘카우보이 풍선(주프)’과 ‘진 재킷’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엠은 자기 자신을 포착하고 내면을 확실히 들여다보며 파악함으로써 과거를 완전히 중단합니다. ‘진 재킷’, 즉 어린 시절에 종말을 고하며 성장했습니다. 주프는 과거에 갇혔지요. 과거에 대한 박물관을 만들고, 그것으로 모자라 진 재킷을 길들여보려고 합니다. 과거는 그렇게 주프를 떠나지 않고 재생산됩니다. 주프는 과거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고, 시트콤 트라우마를 전시한 공간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과거를 옆에 끼고 살려고 들었던 거지요.
그래서 엠은 OJ와 역사를 가진 목장에서 머물며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합쳐 새로운 자신을 발굴하는 것에 성공한 케이스지만, 주프는 죽은 것입니다.
1. 진 재킷, 그리고 엠
진 재킷은 처음엔 말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 괴생명체의 이름이 되었는데, 그것으로 진 재킷은 OJ에서 엠에게 계승됩니다. 이것은 동시에 엠의 성인식이기도 합니다.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OJ고, 중후반까지 그의 말에 대한 사랑과 생명체에 대한 통찰로 영화를 이끌어갑니다.
그러나 엠은 반대입니다. 진 재킷이라는 이름을 붙인 순간부터 달아나고 싶어 하고 OJ에 비하면 겁에 질리고 카메라/오프라 샷이라는 것으로 한걸음 물러난 거리에서 관조적/소극적으로 태도를 보이던 엠이 현장의 일부가 되어 뛰어들게 되지요.
이것은 원래 아버지가 목장에서 계승했어야 할 책임과 성인으로서 확립될 자아를 엠에게 계승하지 못했음을 뜻합니다. 즉 ‘진 재킷’은 어른이 되기 위하여, 자아를 완성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어디 발붙이는 대신 명확한 거주지 대신 썸녀나 여자 친구 집에서 지내고 자기 PR을 계속 반복하는 엠의 태도와 내면과 관련이 있지요. 엠은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가 아직 자아를 완성하지 못했고, 사회에 속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독립된 개체, 어른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니까요.
그때 진 재킷을 받음으로써 엠은 성인식을 치렀어야 하는데, 아버지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는 느낌을 엠에게 주었고 단 한 번도 엠을 보지 않습니다. 엠은 창가에 내내 서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다'는 놉에서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인정과 주목을 뜻하는데, 그래서 남매의 손으로 눈을-그리고 상대를 가리키는 제스처는 그러한 맥락에서 중요성을 가집니다. 내가 널 보고 있다. 너는 중요하다.
따라서 엠은 '인정받지 않은'자식이며, 그래서 진 재킷이라고 이름을 명명하는 과정은 엠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 OJ는 엠의 실질적인 보호자이자 가족이며 리더인 것입니다. ‘진 재킷’은 단지 맹수를 잡아 강함을 증명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앞으로 찾아올 두려운 미래를 향해 걷기 위하여 위에서 말했듯 ‘나’는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상처받고 어린 상태 그대로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크고 화려하게 부풀린 과거의 자아를 살해하며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엠이 진 재킷을 죽이는 것은 부푼 풍선 카우보이를 먹이는 것으로 다소 간단하게 나타내는데, 이건 절대적인 대항마가 엠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진 재킷은 본래 엠의 말이며 엠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었기에 비로소 엠은 어른이 된 것이지요. 마치 영웅전설 속 아더왕이 소년 시절 검을 그리도 쉽게 뽑은 것과 같아요. 목장의 후계는 이제 oj에서 엠이 된 것이고 이제야 엠은 인정받은 것입니다.
위에서 남매의 제스처에 관해 말했습니다. OJ와 엠이 '보고 있다'는 사인을 주고받은 것과 함께 항상 OJ를 보는 위치였던 엠은 후계자의 포지션이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OJ는 고전 영화 제작법을 그대로 이어받은 후계자였고 혁신은 엠의 세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동시에 엠은 옛날의 것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초적인 포착으로 우물 속 카메라로 사진을 찍음으로써 '영화'는 계속해서 이어짐을 암시합니다.
2. 주프와 카우보이 인형
주프는 정말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전형적인 텍사스 카우보이 백인 남자처럼 차려입고 동양인 스테레오 타입과 맞지 않는 제스처를 쓰고 백인 남자의 '선택받은 자'같은 자만심을 가진 동시에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전시한다는 거예요.
이때 그의 오피스는 영화 속 장치가 그렇듯 일종의 내면세계로, 온통 카우보이처럼 꾸며진 사무실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남긴 고디와의 포스터를 비롯해 같이 시트콤을 찍은 배우들의 사진도 있죠. 주프는 snl얘기를 하며 아주 큰 상해로 남지 않았다는 양 얘기를 하는데 전혀 아닌 것이, 내면세계에서 주프는 성장하지 못했고 사무실 포스터 속 어린 아역배우에서 머물러 있습니다.
더 깊은 심리는 숨겨진 방 속 전시장에서 드러납니다. 바로 똑바로 세워진 채 남은 희생자의 신발과 고디에 관한 물품들인데, 이것이 주프를 움직이고요. 엠이 이 흑인 아역배우 좋아했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말과 백인 배우들을 모두 살해 및 상해를 입혔음에도 포스터처럼 주먹을 맞대며 인사를 하려고 했던 고디의 마지막 모습이 교차해요. 어디로 간 지 모르는 그 흑인 배우와 고디는 동일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고디와 어린 주프도 동일한 선에 서 있어요. 그들은 모두 소수자고 인종차별을 받으며 백인들과 달리 공유하는 감상이 있는 거예요.
고디-주프는 동질감을 가진 유대관계였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입니다. 주프-동양인은 백인들처럼 고디-흑인을 두려워하지만, 고디-흑인은 주먹 인사를 시도하며 우리는 같은 편이라고 알려줍니다.
동질성을 가진 고디-주프 관계에서 주프는 살아남았지만 진 재킷에게서는 살아남지 못한 이유는 결국 그 후 주먹 인사의 뜻을 오독하고 백인 쇼맨처럼 살아온 데에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요. 고디와는 주먹 인사를 할 정도로 유대감을 쌓았으면서(비록 둘 다 쇼의 장치였지만) 진 재킷을 볼 때는 자신은 쇼 밖의 더 나은 존재로, 진 재킷은 주는 대로 먹이를 먹는 쇼 상품으로 보았죠. 그것은 그가 자신의 정체성과 과거의 사건을 온전히 내면화하고 딛고 성장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며 카우보이 풍선처럼 산 것을 그대로 투영합니다. 영화에서 주프는 단 한 번도 내면세계를 바꾸지 않고 더 깊은 내면세계 속 전시장도 바꾸지 않았기에 변화되지 않고 성장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자, 다시 돌아와 주프는 영원히 아역배우 시절에 머물러 있습니다. 주프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사고를 재연한 snl에 ‘전설적 연기’라고 표현까지 합니다. 주프는 snl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웃는 ‘쿨’한 사람, 제삼자 시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셀링포인트 삼는 척 연기하면서도 트라우마에 시달립니다. 카우보이 풍선 그 자체가 주프입니다. 주프는 아역배우가 되어 인기 시트콤에 캐스팅되었을 때 자신이 럭키원이고 백인 가족의 일원이 된 바로 그 순간에 머물렀고, 백인 사회의 일부가 되려 애썼으며, 결코 엠처럼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인물과 배경이 없습니다. 미래로 나아갈 가능성은 조금도 가지지 못한 채, 어쩌면 매일 시트콤 사고 현장 속 식탁 밑에 숨은 그대로.
저는 이번 영화가 사회비판/인종차별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계승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놉>은 영화를 위한 영화인데, OJ의 아버지-OJ-엠으로 이어지는 연출로 영화 현장에 대한 조던 필의 애정 어린 비판이며 찬사이고 영화 세대의 계승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래서 ‘엠’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저는 이 영화에 진 재킷이라는 이름이 괴생명체에 붙은 순간부터 주인공이 바뀌었다고 봅니다.
엠은 항상 발붙일 곳 없이 바쁘게 떠돌았습니다. 어딘가 불안정했고, 명확한 일자리 없이 떠돌았지요. 사회초년생들도, 취준생도,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도, 그리고 무언가를 준비하고 명확한 소속감을 가지지 못해 불안해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은 같은 감상을 가지리라 믿습니다. 남들에 비해 뒤쳐진 것 같고, 어딘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초조함과 두려움이 가장 안정한 집안에서조차 스스로를 질식시키지요. 시계 초침 소리는 선명하지 않았다가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 삶에 조바심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누구나 시간을 지나 법적으로 성인이 되지만 어른은 되기 어렵습니다. 스무 살을 먹어도 집에 어른 계시느냐는 말엔 안 계시는데요, 하고 대답하는 그런 거지요. 어른이 되는 속도는 개인 차가 있습니다. 스무 살에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고, 서른이 넘어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실수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전에 트위터에서도 한 말이지만, 실수하세요. <놉>에서 순간을 필름으로 남기는 일에 미쳐 진 재킷에 뛰어든 홀스트처럼 두려운 일에 뛰어들고 실패해 보고 울어도 보고 그러다가 머쓱하게 일어나도 보고 다시 걷기도 해보고 좋아하는 것이 사실 날 힘들게 했다는 것도 깨달아보세요.
내 실패와 실수는 나를 이루고 그때의 경험이 나를 단단하게 만드니까 실수한 나와 실패한 과거를 미워하지 말아요. 언젠가 미래가 되어줄 테니까요. 인생에서 대부분의 두려움은 나 자신에게서 옵니다. 초조함이 나를 말처럼 날뛰게 하고, 집 위에 드리워진 진 재킷의 그림자처럼 두려움을 가져올 테고, 실패한 과거를 곱씹게 하겠지만 언젠가 내게 오지 않은 말 ‘진 재킷’은 오프라 샷을 가져올 ‘진 재킷’이 되어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