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통해 얻은 것 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이직하는 과정은 소개팅과 닮은 구석이 있다. 연애가 끝나고 다음 상대를 찾을 때, 우리는 이전 연애에서 불만이었던 점과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을 바라곤 한다. 이직도 마찬가지다. 한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다음 회사를 물색할 때, 보통 이전 회사에서 아쉬웠던 것을 채워줄 환경을 원하기 마련이다. 내가 이직을 통해 얻고 싶었던 건 크게 세 가지였다. 신뢰를 바탕으로 일하는 팀, 개인의 배움과 성장을 존중하는 환경, 그리고 어느 정도의 연봉 인상. 모두 이 회사에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들이다. 나는 이 세 가지를 목표로 삼고 본격적으로 이직 시장에 뛰어들었다.
백수 신세로 구직하는 과정이 멘탈 싸움이었다면, 회사를 다니면서 구직하는 과정은 시간 싸움이었다. 백수일 때는 시간은 많았으나 돈에 쪼들리며 생긴 조바심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구직 기간 내내 ‘이래서 갈 곳을 찾고 나가야 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 닥쳐 보니 갈 곳을 찾고 나가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구직 플랫폼에 이력서를 올리자 감사하게도 수많은 회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문제는 면접을 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30분짜리 전화 면접이라도 보려면 근무 시간에 꽤 길게 자리를 비워야 했고, 하물며 1시간짜리 코딩 면접을 볼 때는 노트북까지 챙겨 나가야 했다. 회사에 ‘나 면접 봅니다’하고 광고할 생각이 아니라면 아무 때나 면접 일정을 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방법은 더 부지런히 움직여 없는 시간도 만들어내는 것밖에는 없었다. 점심시간에 샌드위치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근처 조용한 카페에 가서 면접을 보거나,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서 일찍 퇴근한 후 면접을 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면접 시간을 확보했다. 퇴근 후에는 다음 면접이 잡힌 회사에 대한 조사를 하고, 기술 면접에 대비하기 위한 공부를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짬나는 시간에 면접까지 보고 나니 집에서는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직을 결심했던 이유를 생각하면 쉴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만족스러운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서는 이 순간 최선을 다해야 했다.
네 다섯 시간짜리 최종 면접이 잡힌 날에는 반차를 쓰고 면접을 보러 갔다. 연차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소중한 휴가를 면접에 모두 쓰는 게 아까울 만도 했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총 다섯 개 회사의 최종 면접에 참석했다. 하루 통째로 휴가를 내고 오전에 한 회사로, 오후에 다른 회사로 면접 두 탕을 뛴 날도 있다. 계속 반차를 쓰면 혹시라도 회사에서 면접 보러 간 걸 눈치 채지는 않을까 싶어 하루에 몰아넣은 것이다. 이날은 하루 종일 긴장된 상태로 면접을 보다가 집에 오니 쓰러질 듯 피곤했다. 하루에 최종 면접을 두 개나 보는 일은 두 번 다시없을 거라 다짐할 만큼 힘든 하루였다. 하지만 이러한 고생은 머지않아 몇 배의 기쁨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면접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구직을 시작한 지 3주 만에 다섯 군데 회사 중 네 곳에서 최종 오퍼를 받았다. 무려 80%의 합격률인 것이다. 심지어 네 번째 오퍼를 받았을 때 아직 면접을 진행 중이던 회사도 몇 군데 있었지만, 이미 합격한 회사들이 충분히 만족스러워서 구직을 중단했다. 믿을 수 없는 성과였다. 영국에서 처음 구직을 시작했을 땐 최종 면접까지 가는 것조차 어려웠고, 세 달이 지나서야 겨우 오퍼를 받았다. 그게 불과 10개월 전이었는데, 그 사이에 뭐가 달라졌기에 3주 만에 네 개의 오퍼를 받을 수 있었을까?
1. 영국 회사에서 쌓은 경력
영국에서 아예 경력이 없는 것과 짧은 경력 하나라도 있는 것은 채용 시장에서 꽤 큰 차이가 있다. 지원자의 입장에서는 모든 경력이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채용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일하는 언어와 방식이 다른 나라에서의 경력보다는 영국에서의 경력에 더 비중을 두게 된다. 이미 영국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과 업무 능력을 보증해주기 때문에, 보다 쉽게 지원자의 역량을 신뢰할 수 있다. 실제로 영국 회사에서 짧게나마 경력이 쌓이고 나니 전에 비해 채용 담당자의 연락이 훨씬 더 많이 오는 것을 체감했다.
2. 주도적으로 일한 경험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리딩 하거나 주도적으로 뭔가를 이뤄낸 경험은 면접에서 얘기할 소중한 자산이 된다. 당시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니 아무래도 대기업에 다닐 때보다는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특히 팀원들을 믿고 자율성을 주던 전 상사와 함께 일할 때는 더 큰 결정권을 가지고 한 프로젝트를 리딩 하기도 했다. 그때 당시에는 각종 어려움에 부딪히며 꽤 고생을 했지만, 이 경험은 추후에 여러 면접에서 빛을 발했다. 경력이 높아질수록 인성 면접에서 리더십 관련 질문을 더 많이 받게 되는데, 그런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경험치가 쌓인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경험은 면접뿐 아니라 실제 업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회사에서 무언가를 리딩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시도해 볼 것을 추천한다.
3. 개인적으로 꾸준히 이어온 공부
무엇보다도 꾸준히 개발 공부를 했던 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연초에 수많은 면접에서 탈락하며 받았던 충격은 자기 계발의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고, 부족한 실력을 메꾸기 위해 회사 업무 외에도 남는 시간에 개발 공부를 꾸준히 이어왔다. 개발 관련 책을 읽고, 온라인 강의를 듣고, 다른 개발자들과 함께 그룹 스터디를 하며 조금씩 실력을 쌓았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배운 것들을 회사 업무에 활용해 보기도 하고, 그게 좋은 성과로 이어지는 경험까지 하니 본격적으로 공부에 재미가 붙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부한 양보다 영국에서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공부한 양이 훨씬 많아졌다. 이런 지속적인 공부는 단단한 실력으로 쌓여 자연스럽게 기술 면접에서도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고단했던 면접 대란의 끝에 오퍼 네 개를 손에 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연초에는 그렇게 어려워 보이던 기술 면접에서 이만큼 좋은 성과를 내다니 스스로도 믿기 어려웠다. 노력하면 못할 게 없다는 걸 몸소 깨닫는 순간이었다. 사실 한 번의 시도로 이직에 성공할 자신이 없어서, 이번에 오퍼를 못 받아도 너무 상심하지 말고 다음에 다시 도전하자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반전인가. 이런 기분 좋은 반전이라면 100번도 더 보고 싶었다.
돌아보니 이직을 통해 내가 얻은 건 애초에 목표했던 세 가지뿐이 아니었다. 보다 안정된 팀, 배움의 기회, 그리고 연봉 인상까지 모두 나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것들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수확은 면접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있던 자신감을 되찾은 것이었다. 어렵게 퇴사할 용기를 내고, 두려웠던 면접에 다시 도전하고, 그 끝에 생각지도 못 했던 좋은 성과를 거두는 과정에서 한 뼘 더 성장한 나를 발견했다. 그 경험 덕분에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자기 회의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 내가 이직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