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개선점을 찾기 위한 퇴사자 인터뷰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퇴사할 예정입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상사에게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그녀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수없이 상상해온 순간이었다. 다른 회사에서 만족스러운 오퍼도 받은 마당에 더 이상 이 회사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회사에 조금이라도 미련이 남아 있었다면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어렵게 느껴졌겠지만, 퇴사를 결정하기 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기에 미련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막힌 속이 뻥 뚫리듯 후련했다. 나는 그렇게 영국에서 어렵게 취업한 첫 회사에서 1년도 지나지 않아 퇴사하게 되었다.
퇴사 의사를 밝히자 퇴사자 인터뷰(Exit Interview)라는 이름의 회의가 잡혔다. Exit Interview는 직역하면 ‘퇴장 인터뷰’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나가는 이유를 묻는 미팅이다. 입사 전 면접에서 “이 회사에 지원한 이유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하듯, 퇴사 전에 “이 회사를 나가는 이유가 무엇인가요?”를 묻는 것이다. 답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나가는 마당에 왜 불편하게 회의까지 잡아 이유를 묻느냐고 불평할 수도 있지만, 퇴사자 인터뷰는 많은 인사팀에서 직원들과의 대화 중 가장 중요한 대화로 꼽을 정도로 회사에게 의미 있는 회의다.
퇴사자 인터뷰의 궁극적인 목적은 회사의 개선점을 찾는 것이다. 한 직원이 어떠한 문제로 인해 나가기로 결심했을 때는 다른 직원들도 비슷한 불만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미 퇴사하기로 결정한 직원의 마음을 바꾸긴 어렵겠지만, 남은 직원들이 같은 이유로 나가지 않도록 방지할 수는 있다. 이를 위한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퇴사자의 피드백을 수렴해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다. 때로는 퇴사 이유가 단기간에 개선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도 있으나, 그런 경우에도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를 파악해두면 언제든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퇴사자 인터뷰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은 아래와 같다.
회사를 나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기에서 일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어떤 점이 좋았나요?
직속 상사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나요?
회사가 개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한국에서 퇴사할 때 잡혔던 회의는 팀장님과의 간단한 면담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그냥 커피 한 잔 하며 비공식적으로 퇴사 이유를 묻는 자리였으므로 회의라고 부르긴 조금 애매하다. 상무님과의 면담도 예정되어 있었으나 그분의 다른 일정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일정이 비는 시간으로 옮겨도 될 텐데 아예 취소한 걸 보면 꼭 필요한 면담은 아닌 것이라 이해했다. 실제 면담을 한 퇴사자들도 그냥 형식적인 미팅이었다고 하니 회사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자리는 아니었던 듯하다.
사실 상무님이 나에게 왜 퇴사하냐고 물었다면 솔직하게 답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퇴사가 아니면 1:1로 얘기할 일도 없는 분이 갑자기 면담을 하자고 하는 상황에 사실대로 회사의 문제점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다. 이런 면담에서는 근본적인 퇴사 이유보다는 상무님이 듣기 좋게 잘 포장된 이유를 말하는 게 암묵적인 예의처럼 느껴졌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서는 높은 직함이 주는 무게감이 크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솔직해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비교적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가진 영국 회사에서는 퇴사 이유를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쉬웠냐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인사팀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는 건 어떤 조직 문화에서건 당연히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인사팀에서 진짜 인터뷰처럼 미리 질문지를 준비해 오고, 내가 답하는 것도 일일이 기록하는 모습을 보니 솔직하게 답변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하면서 이렇게 자세한 질문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는데, 아무래도 구체적인 질문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구체적인 답변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피드백이 조금이라도 반영되어 남은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너 때문이 아니야, 나 때문이야.” 남녀 사이의 이별 멘트로 흔히 쓰이는 말이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네가 나한테 안 좋다는 걸 깨달은 나 때문이야.”라고 하는 재미있는 문구가 있길래 가져와 봤다. 사실 겉으로만 나 때문이라고 하면서 “네가 나한테 안 좋다”는 걸 강조하는 셈이다. 이는 이별하는 상황뿐 아니라 퇴사하는 상황에도 잘 들어맞는 말이다. 내가 퇴사한 이유는 이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 나에게 안 좋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봐도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 팀장이라는 사람이 주니어에게 상처가 되는 망언을 수시로 내뱉은 점, 팀원들이 그녀에게 마이크로 매니징에 관한 피드백을 여러 번 주었으나 전혀 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리고 그런 팀장을 감싸고도는 회사의 태도를 보면서, 그런 환경에서 내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주관적인 불만도 분명 있었다는 건 인정한다. 누군가에겐 최악의 회사가 다른 누군가에겐 좋은 회사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업무 강도가 센 회사를 기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계속 챌린지가 있는 환경에서 더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도 있고, 상사에게 세밀한 가이드라인을 받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더 높은 자율성을 가지고 일하는 걸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궁극적으로 나는 그 당시 내 상사의 매니징 방식, 그리고 회사가 원하는 방향이 주관적으로 나와 맞지 않았기에 퇴사를 결정했다.
개개인의 성향과 기호가 다양한 만큼 모든 직원의 퇴사 이유 또한 조금씩 다를 것이다. 현실적으로 회사 입장에서 모두를 만족시키긴 어렵지만, 최소한 그들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는 있다. 여러 퇴사자 인터뷰에서 공통으로 들려오는 퇴사 이유가 있다면 이는 분명 개선할 필요가 있는 문제다. 이 부분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남은 직원들마저 줄줄이 잃는 상황을 면치 못할 것이다. 회사에서 좋은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 만큼, 그들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