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현 Apr 28. 2022

다시 퇴사할 용기를 내기까지

스스로 해주지 못했던 ‘잘할 거야’라는 한 마디

직장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돈, 업무, 그리고 사람이다. 힘겨운 해외 취업 준비의 끝에 두 회사에서 오퍼를 받았을 때, 두 군데 중 이곳에 입사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사람’이었다. 두 회사 모두 연봉과 업무는 비슷했지만, 이곳의 상사와 팀원들이 면접에서 더 좋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도 ‘사람’이었다. 잘 따르던 전 상사의 갑작스러운 정리해고, 새로운 팀장의 마이크로 매니징과 망언, 그리고 그 팀장을 감싸고도는 회사의 태도까지. 이 모든 걸 몇 달 사이에 겪고 나니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퇴사를 고민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퇴사를 망설인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와 이직을 쉽게 결정할 수 없던 이유가 있었다. 영국에 온 초반에 취업 때문에 했던 고생을 또다시 반복하게 될까 봐. 끝이 보이지 않던 면접 공부, 도망치고 싶었던 장시간의 어려운 기술 면접, 그리고 그 이후 수많은 회사로부터 연달아 받았던 불합격 메일. 그때의 괴로운 기억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았고, 나의 무의식 속에 깊게 자리 잡아 이직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냈다. 이 두려움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회사 상황이 이만큼 악화되는 마당에도 퇴사를 망설이게 했다.


입사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퇴사를 주저하게 하는데 한몫했다. 퇴사를 고민하던 당시 이 회사에 입사한 지 7개월이 좀 넘은 시기였는데, 여러모로 이직하기엔 다소 빈약한 근무 기간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이력서에 쓰기에 굉장히 애매한 경력이었다. 입사한 지 1년도 안 돼서 퇴사한 걸 이력서에 적으면 ‘쉽게 관두는 사람’으로 비칠까 봐 걱정됐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구구절절 이력서에 적을 수는 없으니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반년 만에 이직할 실력을 체득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새 회사에서 다양한 일도 해보고 개인적으로도 조금씩 개발 공부를 이어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수월하게 이직할 만한 실력을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불과 반년 전에 구직에 어려움을 겪던 내가 몇 달 새에 발전해봤자 얼마나 발전했겠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내 안에서 점점 커져가던 의심의 목소리에 짓눌린 나는 ‘아무래도 이직은 조금 더 준비된 뒤에 시도해 봐야겠다’라는 결론을 지으며 퇴사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담았다.



다시 퇴사할 용기를 내기까지

여러 이유로 계속 ‘퇴사는 나중에’를 고집하던 나에게 퇴사할 용기를 불어넣어 준 건 함께 개발 스터디를 하던 선배 개발자의 한마디였다.


“너는 어딜 가도 잘할 거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 흔한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 힘겨운 구직 기간 동안 수많은 거절을 당하면서 나조차도 내가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어버렸고, 어렵게 취업한 회사에서는 자신감을 회복할 새도 없이 온갖 이상한 일들을 겪으며 퇴사를 고민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그마저도 이직을 잘 해낼 자신이 없어 고민만 할 뿐 뭐 하나 시작하지 못하던 나에게, 단 한 명이라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됐다. ‘잘할 거야’라는 말은 내가 스스로에게 해줘야 했으나 해주지 못했던 말이었다. 그 말을 대신 해준 선배 덕분에 나도 다시 나를 믿을 수 있었다.


사실 이직에 도전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실력이 부족하면 면접을 통해 뭐가 모자란  파악해  부분을  공부하면 되고, 근무 기간이 짧은  문제 삼는다면 적당히 설명하면 된다. 그때와 달리 백수 신세아니니 면접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돈에 쪼들릴 일은 없다. 떨어지면 그냥 지금 회사에 계속 다니면서  준비하면 된다. 실력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하고 가만히 있으면 언제 실력이 갖춰질지 모른다. 그보다는 직접 부딪혀보고  경험을 통해  실력을 가늠해 보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직 시도조차 망설였던 수많은 이유는 거절당할 용기가 없었던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바닥으로 떨어져 있던 자신감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은 그 허상을 거둬내고 다시 면접에 뛰어들어 보란 듯이 성공을 거머쥐는 것이었다. 그러기까지는 또 몇 차례 거절을 당할 테고, 그 거절은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듯 쓰라리겠지만 그만큼 예쁜 새살이 돋게 할 것이다.




다시 거절당할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리고 반년 만에 다시 이력서를 고쳐 쓰면서 재차 되새겼다. 면접에서 떨어진다고 내 인생이 실패하는 건 아니라는 걸 잊지 말자고. 인생은 몇 장의 근사한 사진이 아니라 정해진 끝이 없는 다큐멘터리다. 정해진 끝이 없다는 건 계속 새로운 결말을 덮어 씌우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다. 내가 원하는 결말이 나올 때까지 계속 넘어지고, 아픈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고, 다시 딛고 일어나 또 달려 나갈 것이라 다짐했다. 그게 내 자신감 회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전 16화 악덕 팀장에 맞서는 자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