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Oct 02. 2022

이유가 있겠지

일상에서의 단상

8월은 한 달 내내 감기, 그리고 그것과 비슷한 것과 싸워야 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감기가 걸려 오면 저는 그것을 잘 이겨내지 못하고 언제나 함께 감기 당첨입니다.

어쩔 수 없이 약을 독하게 썼고,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출근하는 길.

지하철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저를, 굳이 손으로 팔로 밀쳐 내고 제 자리를 차지하는 아주머니를 마주했습니다. 체구가 작은 저는 몸집이 저보다 훨씬 크신 분께 밀린 것도 좀 서럽고, 20분 안락하기 위해 가장 끝 열차에 걸어 탄 건데 하고 짜증이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고개를 돌려 아주머니 얼굴은 보는데, 그 짧은 순간 거의 잠든 것처럼 보이십니다.



이유가 있겠지


아! 이유가 있겠지. 밤샘 근무를 하고 퇴근길일 수도 있고 여러 이유로 잠 못 자고 출근하는 길일 수도 있을 테고요. 설사 아니더라도 이렇게 생각하니 찌푸려졌던 제 미간이 펴졌습니다.


감기와 사투를 벌일 때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일이 많아 잠을 거의 못 잔 남편과의 아침의 첫 대화, 아이가 망가뜨린 피규어가 주제였습니다.

남편: 이거 깨졌네.

나: 응, 좀 됐잖아.

남편: 나는 몰랐는데.

나는 몰랐는데-라고 말하는 그 남편의 말투에 순간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머릿속에선 그래 그렇구나 정도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꼭 망가뜨린 게 제 탓인 것 마냥 들렸거든요.

평소에도 마이너스의 손이라 불리는 저는 저는 몸이 안 좋으니 그냥 넘길 말도 가슴에 와닿았고, 남편 역시 아픈 데다가 바쁜 시기라 상대의 입장에서 대화가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과 7년, 아이와 5년째 온전히 우리의 가정을 이루며 살다 보니 가정이 가장 기본적인 사회라는 말의 의미가 다가옵니다. 이렇게 나의 감정이 순간 상했다고 있는 힘껏 표현하면 우리 집에 좋을 것이 하나 없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각자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그럴 때엔 내 감정을 앞세우는 것보다 상대 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하며 서로서로 조율하며 지내야 한다는 것을요.


부정의 감정이 올라오면 잠시 멈춥니다. 그리고 상대의 눈을 바라봅니다. 지쳐 있는 눈빛, 잠깐 쉼이 필요한 듯한 눈빛. 그리고 아 나도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이 상태로 서로의 감정을 표현해봤자 좋을 것이 하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밀려옵니다. 그리고 저에게 밝은 빛을 내어주고 또한 상대를 밝히기 위해 한 번 멈추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있겠지.

멈추고 쉬고 말하고 행동하면 각자의 생각을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말을 할 때도 끊임없이 속사포로 쏟아내는 것보다는 문장과 문장, 그리고 단어와 단어 사이에 쉼을 주는 것이 더욱 전달이 잘 됩니다. 말하기 스킬에서 강조하는 방법 중에도 강조하고 싶은 말 바로 앞에 잠깐 퍼즈를 주는 것이 있습니다. 쉬고 강조할 말을 하면 더욱 임팩트가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렇게 잠깐 쉬었다가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말을 하고 그때의 내 감정을 표현합니다. 잠깐 쉬는 시간이 정말 3초의 잠깐일 수도 있고 서로의 기분이 나아진 후 일수도 있습니다. 너무 길지만 않다면 그렇게 '잠깐 쉬고' 마주한 시간은 서로의 이유에 대해 더욱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사회 안에서 '이유가 있겠지' 각자의 상황과 감정을 존중하며 보내는 연습을 이렇게 해나갑니다. 그리고 제가 속한 집단이 서로의 탓을 하는 게 아닌,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빛나길 바라봅니다. 더 나아간다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서로를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작가의 이전글 난 '지금'은 엄마랑’만’ 놀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