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내 것이 아닌 게 되는 날들
3월 2일. 아이가 유치원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수업 시간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코로나로 무산되고 모든 것은 줌으로, 그리고 아이는 입학식보다 이틀 먼저 유치원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적응기간을 갖게 된 것이지요.
낯을 참 많이 가리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친구라 걱정했는데 정말 많이 컸습니다. 혼자 씩씩하게 버스를 타고 약간은 긴장된 얼굴로 앞을 응시하며 버스에 앉아있던 아이의 얼굴이 다음날이 된 오늘도 생생합니다. "나는 잘할 수 있어" 하고 다짐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눈으로 많이 보는 아이
아이가 조금 더 어릴 때 놀이터에서도 저와 떨어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계단 하나하나 오를 때도 수십 번씩 고민하는 듯했습니다. 계단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어요. 그러다가 "괜찮아,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하고 엄마인 제가 다독여주고 시범을 또 몇 번 보여줘야 한 발 천천히 내딛곤 했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다 하는 것 같은 기구를 바라만 보고 있을 때, 몇 번이고 하고 싶은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가서 혼자 집중할 시간을 갖게 했어요. 아이는 무서워하면서도 작은 발 하나를 놀이터 기구에 올려놓더니 이내 해내고 몇 번이고 그것을 반복합니다.
또래 친구들의 근처에는 가지도 않던 아이를 보고 선배 엄마들이 "아이가 엄마랑 노는 게 너무 재미있나 보다."라고 말해줄 때는 '그래 네가 지금은 엄마가 가장 편하니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라며 수십 번 저를 다독였어요. 아이가 어린이집 친구들을 놀이터에서 만나도 쉽게 다가가는 법이 없었거든요.
기저귀를 뗄 때도 이러한 성향을 알기에 마음을 급히 먹지 않았습니다. 30개월쯤 영유아 검진 때 의사 선생님이 이제 시도해도 괜찮다고 말씀해주셔서 아이에게 두어 번 물어봤어요. 처음엔 싫다던 아이가 세 번째쯤엔 해보겠다고 했고, 그렇게 하루 만에 낮 기저귀를, 그리고 이틀 만에 밤 기저귀를 떼었습니다. 초반에 이불을 두어 번 정도 빤 이후로 아이는 30개월 자신의 일부였던 기저귀와 완벽하게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다 내 것이 아닌 게 되는 날
세 돌이 지나고는 거짓말처럼 아이가 낯 가리는 것이 사라져 가고 모든 것들에 거침없이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3년 동안 아이가 바라봤던 세상이 이제 편안해졌나 보다 싶었습니다. 감사하면서도 너무나 급변한 아이의 성향에 적응이 안 되기도 했어요.
이런 아이가 43개월 이제 유치원에 간 첫날이었습니다. 즐거웠다고 또 간다고 하는데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보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생했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잠을 자기, 전 친구들과 똑같이 나눠 먹는 내용의 책을 읽는데 갑자기 짜증을 부립니다. 피곤한가 보다 하고 "피곤하면 자면 돼." 하고 아이에게 조금 큰 목소리를 냈더니 이내 펑펑 울어 버립니다.
재워야겠다 싶어 침대에 눕게 하고 토닥토닥 안아주는데, "오늘 너무 속상했어요. 선생님이 나한테 저리 가라고 했어요." 하는 겁니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아이 말로는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나눠 주는 과정에서 "다 내 거야" 했다고 합니다. 아이가 몬테소리 센터를 다니며 했던 행동 패턴을 생각하며 대충 짐작을 해봤어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선생님께 편안하게 다가가고 장난을 치고 내 것이라 한 것이 아닐까 하고요. (선생님과 통화 후 알게 되었는데 신난 나머지 행동이 과해져서 보조 선생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신 상황이 있었다고 해요.)
친구들에게 다 하나씩 나눠주려고 한 게 아녔을까 아이에게 설명해줬더니, "유치원에서는 다 내 것이 아닌 거예요? 집에서만 다 내 거 할 수 있을 거예요?" 하고 묻습니다. 외동인 아이에게 미안함 아닌 미안함으로 다가오는 시간이었어요. 혼자 노는 뒷모습을 보며 항상 그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아이에게 그것을 배울 환경을 제대로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졌습니다.
많이 피곤했던지 그렇게 이야기하다 스르륵 잠든 아이를 어둠 속에서 한참 바라보며, 이렇게 하나씩 배워 가는 거야, 엄마가 옆에 있을게-라고 속삭였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기
5살, 43개월.먼 친정과 시댁, 그리고 코로나를 핑계로 엄마 아빠와만 사는 세상에 갇혀 있던 아이. 이제 많은 것들을 차츰 알아갈 텐데 너무 버겁진 않을지. 그래도 해내야 하는 것들이기에 어떻게 하면 아이가 많이 상처받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오늘 아침도 많은 생각이 오갑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그래 왔던 것처럼 오래 바라보고 느끼고 또 하나씩 해나가겠지요.
우리는 좋은 기억으로 사느냐, 좋지 않은 기억으로 사느냐에 따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도 바뀌는 것 같습니다. 엄마인 내가 해줄 일은 울퉁불퉁한 이 기나 긴 길에서, 아이가 더 행복한 기억으로 자신을 아끼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며 걸어갈 힘을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럴려면 나 자신부터 아이보다 더 빨리 시작한 이 길을 아름다운 여정으로 바라보고 묵묵히 걸어야겠다- 한 번 더 다짐합니다. 요즘 SNS 피드에는 아이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부모님들의 염원이 가득 담겨 있는 걸 느낍니다. 우리의 바람대로, 새 학기 아이도 부모님도 모두 건승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