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완벽주의자> 중에 나는 어떤 유형일까
지원사업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써야 한다는 이유로 지난 2주간은 모든 일을 끝없이 미루는 상태였다. (근데 문제는 목표했던 사업계획서조차도 끝내지 못했다는 것)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지난 주 상담에서 상황을 털어놓고, 효과없던 ADHD약이라도 증량해서 처방 받아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단순히 미루는 게 문제는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막막하다는 느낌이 들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가만히 굳어버리는 패턴이 보여서였다. 회사를 다닐 때는 실제 꽤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상황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내 문제가 가려졌었다. 하지만 이렇게 혼자서 일을 하다보니 이건 '내 문제'라는 게 더 명확해졌다.
상담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다 듣고 ADHD보다는 불안과 완벽주의 탓일 가능성이 더 높다며 책을 한 권 추천해주셨다. <네 명의 완벽주의자>라는 책이었다. 심리학 교수님이 쓴 책이라 실제 논문 기반으로 완벽주의를 이해하고, 완벽주의를 총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그리고 각 유형별로 실천적인 방법도 제시한다.
맥락이 없었다면 아마 흔한 심리학 서적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책이다. 하지만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듯이 자기 계발서는 '필요한 책'이다. 나는 지금 이 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에게 어느 다른 책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책에서는 첫번째 기준으로 '자기평가소재'를 꼽았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평가할 때 기준을 자기 자신(내부)에 두는 지 아니면 타인(외부)에 두는 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두번째 기준은 '자기 조절 초점'이라는 개념이다. 더 얻으려는 것과 가진 것을 지키려는 것 중에 어느 쪽에 중점을 두고 행동하냐는 점이다.
소위 '행복한 완벽주의자'로 불리는 경우는 자기자신의 가치를 평가할 때 자신의 가치관에 초점을 맞추고, 성공했을 때 얻게 될 멋진 일에 초점을 맞춰 행동한다고 한다.
나는 두 기준 다 '행복한 완벽주의자'의 반대다. 스스로의 가치를 타인의 시선에 두고, 실패했을 때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되는 데에 대한 통계적인 분석들이 따라 붙는다. 어린시절 지속적으로 경험한 수치심 또는 애정없는 엄격함 등등. 근데 그런 건 이제 크게 중요치 않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요하겠지만 지금의 나를 구할 수는 없으니까.
나 같은 '스릴추구 막판스퍼트형'의 경우,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건 간에 스스로를 제일 많이 갉아먹는 유형이라고 한다. 일을 실제로 다 끝내고 끝낼거라는 믿음이 있더라도 그 과정에서 가치를 잃게 되는 유형이라서. 그런 경우에 가장 필요한 건 원하는 것을 직시할 용기. 그리고 자기 자비라고 한다. 미루고 있는 자기 자신을 게으르고 한심하다고 타박하기보다 "미루는 이유는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잘 해내고 싶기 때문"임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것 말이다.
아마 그런 경험이 익숙했다면 이런 유형이 되지 않았겠지만. 이제라도 스스로를 그렇게 대하는 어른이 되어야한다. 이제 부모가 아닌 자신이 스스로를 돌봐야하는 성인이니까. 받아보지 못했다고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잘 된 일이다. 난 그들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나를 대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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