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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글나글 Nov 11. 2021

퇴사한 지 5개월, 근황토크

충격적인 결정을 해버렸어


벌써 올해의 끝자락.

회사에서 나온 지 5개월을 지나 6개월로 접어들고 있다. 요 몇 년 간 가장 오랜 백수생활이다. 예전엔 길어봤자 3개월 정도 신나게 놀다가 다시 머슴살이 할 대감댁으로 들어갔었는데.


자유의 몸이 된 지 5개월, 나는 지금 그냥...자유의 몸이다. 자유로운 몸뚱어리.


이번 퇴사는 왠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 같았다. 퇴사 직후에는 새로운 삶을 향한 열정 같은 게 이글이글 타올랐다. 어딘가에 더 이상은 속하고 싶지 않았다. 남의 집 일을 해 주며 나를 갉아먹고 싶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남의 집 일인데 남의 집 일이라 생각 않고 매달리는 나 때문에 내가 너무 지쳤었다. 사람들과 한 데 섞여 일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 좋아하던 나는 인간불신자가 되어 마음에 철가루 같은 게 잔뜩 껴버린 상태였다.



도비는 자유예유!!!!



남은 삶은 나를 위해, 나만을 위해 살자.

그렇게 결심하고 '나만을 위해 살' 궁리를 요리조리 했다. 오, 말로만 듣던 디지털 노마드? 완전 딱이네. 그래,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사는 거야. 다 필요없어. 자유로운 거 최고! 나 최고!


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위해 이것저것 준비했다. 요즘 핫하다는 것들은 다 알아봤고, 그 중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들로 pick 해서 온라인 클래스로 강의를 들으며 차근차근 개념을 익히고 세팅해 나갔다.

강사들은  이걸로  천만 원 번다고, 여러분도   있다고 희망을 잔뜩 끼얹었다. 물론  만원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진짜로 사회생활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없이 웬만큼  정도의 돈을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오백 정도 벌면서 ... 있었으면 차암 좋겠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그저 '자유로운 몸뚱어리'.




5개월 백수로 지내며 깨달은 게 있다. 나는 생각보다 더 게으른 인간이었다는 거...

물론 준비는 참 열심히 했다. 준비하던 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시작을 해서 실제로 돈도 벌었다. 나머지 하나는 준비를 다 마쳤고 이제 시작만 하면 되는데, 왠지...왜앤지 시작하기가 망설여졌다. '내가 이걸 꾸준히, 성실하게 할 수 있을까?' 뭔가 자신이 없었다.


어느 순간 손을 놓았다. 놓고 나니 게으름이 몰려왔다. 그토록 열망하던 자유가 주어졌고, 주체적인 삶 속에서 나 혼자 배불리며 살려던 내가, 사실은 완전히 머슴 체질이었...나? 맙소사, 믿을 수 없어!


자타가 인정한 워커홀릭인 내가, 오롯이 나만의 일을 하게 됐는데 일이 오지게 하기 싫다. 너무 귀찮다. 심지어 그들이 말한 월 천만원 벌려면 진짜로 미친듯이 해야 하는 거였다. 디지털 노마드? 이거 쉬운 거 절대 아니었다.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


뭐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그 일'이 좋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일했던 거였다. 재미없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불가능한 인간이었던 거다. (뭐 물론 돈을 왕창 벌었으면 없던 재미도 생겼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어떤 것에도 열중하지 않고 그냥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이 작아보이기 시작했다. 내 존재의 의미가 희미해진다고 해야 할까?

이런 생각까지 드는 걸 보고 깨달았다. '아, 나는 아직 회사원 해야겠구나.'


결국 미루고 미루던 포트폴리오를 사부작 사부작 완성해놨고, 서랍 어딘가 처박아뒀던 채용 앱을 다시 들락거리고 있다. 채용 앱에서 이 회사 저 회사, 이런 일 저런 일 접하다 보니 점점 더 일이 하고 싶어진다. 5개월 전 호기롭게 퇴사하며 절대 회사로 돌아오지 않겠다! 결심하던 과거의 내가 너무도 민망할 만큼.




뭐 물론, 다시 회사생활을 할 생각을 하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지옥철에 끼여 졸린 눈 부비며 출근하는 것도, 이리 치이고 저리 쪼이며 받을 스트레스도, 집, 회사, 집, 회사 좀비 같이 반복될 일상도 전부 두렵다.

하지만 뭐든지 내 마음 먹기에 달렸다. 지난 사회생활에서, 그리고 최근 5개월 동안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을 잊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먹을 거다. 항상 제일 중요한 건 '나'라는 거. 일도 사람도 그 어떤 것도 나보다 앞에 두지 말자는 것. 어느 새 자연스럽게 잊고 살다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던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


어쨌든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갈 것 같다. 지난 5개월 무한정의 자유 속에서 살다가 나는 다시 약간의 자유를 포기하는 삶을 택했다. 부디 내가 마음 먹은 대로 나를 잃지 않길 바라며, 5개월 동안 디톡스 해놓은 내 몸과 마음이 다시 독으로 차지 않길 바라며, 아자!



3개월 후면 다시 이 상태 된다에 오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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