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저성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부 두드러진 특성이 전체 인상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심리 현상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첫인상으로 상대방의 속내까지 판단하는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어쩔 수 없는 심리적 편향이지만, 일부를 보고 전체를 잘 아는 것 같은 오해와 착각을 일으킵니다.
최근 인천에서는 장애가 있는 여고생을 모텔에 가둬놓고 폭행한 10대 2명이 구속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훔친 렌터카를 몰다 사망사고를 내는가 하면 디지털성범죄에도 가담하는 등 각종 청소년 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합니다. 전체 소년사건 중 이런 흉악범죄는 1%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언론 보도가 집중되다 보니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나는 것인 양 청소년 범죄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졌습니다.
▲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어김없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 형사미성년자를 뜻하는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는지,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의 성장 배경은 어떤지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만 난무하는 지금, 국내 최초로 8년 연속 소년재판을 맡았던 부산지방법원 천종호 판사는 오히려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말했습니다. 수원가정법원장인 박종택 판사도 소년범은 ‘사회구조의 산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 방송사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반려견이 문제행동을 하는 원인을 알아보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내용이었는데, 개보다 주인이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 판사에 따르면 소년범 대부분은 가정 해체나 학대, 빈곤 등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가출은 일상입니다. 주로 숙식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지만, 보호처분을 받고 소년원에 다녀와도 돌아갈 곳도, 돌봐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10명 중 7명이 재범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형편상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어려워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전국에 있는 소년원은 단 10곳, 수용된 아이들은 1천 명이 넘습니다. 일본에는 50곳 넘게 있다는 걸 고려하면 얼마나 적은 건지 알 수 있습니다. 다닥다닥 붙어서 제대로 된 생활을 하기 어려운 건 물론이고 신체적·정신적 학대가 일어나거나 새로운 범죄를 학습하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새로운 소년원을 만들려는 시도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힙니다.
소년재판은 일명 ‘컵라면 재판’이라고 불립니다. 한정된 시간 동안 수많은 사건에 대한 처분을 내려지기 때문에 한 사람당 3~4분만 할애된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라면이 끓는 그 짧은 시간에 소년원에 가든 집으로 가든 한 아이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판사와 아이들이 충분히 얘기를 나눌 수 없다 보니 미리 정한 처분이 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희도 그렇다
“나를 믿어줄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아이들은 제자리로 반드시 돌아옵니다”
-박준영, 『우리들의 변호사』
편견을 걷어낸 ‘관심’이 시작입니다. 소년범 대부분이 사소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라는 사실부터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 처벌 규정을 개정하는 논의가 필요할 수 있겠지만, 소년법 폐지 등 극단적인 대책은 아이들 대부분을 전과자로 낙인찍을 뿐입니다. 한 범죄심리 전문가는 범죄자가 재범하지 않으려면 ‘범죄로 자신의 인생을 허비했다’는 걸 자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고 생각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피해자와 유족 등을 어떻게 도울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범죄가 발생하면 가해자의 처벌 수위 등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피해자의 상처는 방치되곤 합니다. 특히, 조사과정에서 범죄 상황을 반복해서 진술하는 등 스트레스로 2차 피해를 입고 가해자의 보복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자와 유족의 신변 보호는 물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심리적 지원 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환경은 아이들을 지배한다고 합니다.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아이들이 바뀌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청소년의 잔혹한 범죄 수법은 어른들의 범죄를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학교 선생님뿐 아니라 경찰관, 사회복지사 등 지역사회 전체가 관심의 눈으로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지역사회 사회복지사와 공무원, 정신과 의사 등이 함께 아이들을 보살피는 시스템도 구축돼야 합니다.
소년전담기관도 필요합니다. 현재는 가정법원 소년부에서 소년사건을 모두 담당하고 있고, 가정법원이 없는 지역은 지방법원 소년부가 담당합니다. 이렇다 보니 업무는 과하게 많고 전문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정, 교육, 복지 등을 총괄할 수 있는 소년전담기관이 만들어져야 하고 과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년원도 더 늘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소년원에서 알려주는 제과제빵 기술이 아이들의 재범을 멈추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노력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고, 허기도 채워지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빵을 먹으면서 나눔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칭찬보다는 비난과 질책이 익숙하고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아이들. 순식간에 완성되는 ‘컵라면’이 아니라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만든 ‘따뜻한 빵’이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