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때 찾는 헬스장은 늘 한산해서 애정하며 찾는 곳이다.
점심시간 한 시간 내에 운동을 하는지라 러닝머신 삼십 분 걷고 난 후 씻고 가면 딱 시간을 맞출 수 있다.
빠듯한 시간이지만 그래도 이 큰 공간을 나만 쓰는 지라 거리낌 없이 휘젓고 다닐 수 있었다.
그러다가 설날 연휴가 지났을 때였다.
회사 임원이 새로 등록을 했는지 나와 같은 시간에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우 살이 쪄서 운동을 좀 해야겠어!" 라며 신입 회원 신고를 마친 임원은 그다음 날부터 꾸준하게 점심때마다 운동을 했다.
나보다 먼저 와서 운동을 하고 있던 임원은 내가 갈 때까지도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다이어트에 진심이구나 하면서도 새벽부터 일찍 출근하는 임원이라 점심시간 한 시간에 제약이 없나 보다 싶었다.
하루 이틀 마주치다 보면서 그간 혼자서 즐겨왔던 영역이 침해당했다는 기분에 더하여 나보다 한참 서열이 높은 분이라 아무런 항거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불편함은 커져갔다.
임원이 러닝머신을 타고 있으면 멀찌감치 떨어진 러닝머신을 탔고 그가 기구 운동이라도 하면 그날은 '에휴 그냥 유산소만 하고 가자' 하고는 근력운동을 생략했고 헬스장에 딸린 목욕탕에 임원이 몸을 담그고 있으면 '에휴 그냥 샤워만 하고 가자' 하는 타협이 늘어나면서 심통이 났다.
사실 내 돈 내고 다니는 헬스장에서 그도 마찬가지인 회원인지라 뭐 어째라 저째라 할 그럴 일은 없지만 회사에서의 상하관계를 호젓하게 즐기는 점심시간까지 끌고 온 것이 마음 상했던 포인트였다.
그러다 얼마 전 회사 안에서 솔깃한 소문이 돌았는데 매주 토요일 출근하는 임원 이상 분들의 딴 세상 얘기였다.
토요일 외부 사장단 회의에 참석했던 사장이 복귀하여 확인할 게 있어 담당임원을 찾았는데 그가 마침 나와 점심시간에 같이 윤동하는 그 임원이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 임원은 사장이 복귀하는지 모르고 이미 퇴근해 부재중이었고 소문에 사장이 찾는데 자리에 없었다며 큰 짜증이 있었다 하는데 그다음 상황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는 뭐 뻔한 얘기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찾은 헬스장에는 그 임원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는데 아마 언제 걸려 올지 모를 사장 전화를 24시간 대기 중인가 싶었다.
내게 그런 기회가 올리도 없겠지만 나 같았으면 아마 피 말라죽었을 그런 일이겠다 하며 자기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