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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잇 Jul 26. 2022

잔류 염소탕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교감까지 지내신 외조부께서는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의 형제와 외가 사람들은 거의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신기한 일이다) 자손들의 성적에는 큰 신경을 두지 않으셨지만, 생활 속 예의범절에는 엄격하셨다. 그 당시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무섭게 느껴졌던 이유가 있지만 요강에 대변을 본다던가, 마당에 있는 능금나무에 소변을 누어서 눈총을 맞은 적이 있다. 식사 시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식사 이외에는 다른 것에 신경을 두면 안 되었는데, 간혹 TV나 라디오가 켜져 있어서 잠깐 한눈을 팔았다 하면 항상 초승달처럼 인자하게 웃는 상이던 외조부님의 눈은 금세 커져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럴 때는 엄마의 진노보다 더 무서웠다. 효과는 확실하여 지금까지도 식사 중에는 TV나 휴대폰을 하지 않는다. 나도 나이가 들어 자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그런 카리스마로 제압하고 싶지만, 외가의 큰 눈을 물려받지 못하여 어려울 것이다.


엄마와 집 앞 염소탕집에 간 적이 있다. 엄마는 외조부님의 눈을 잊은 것인지 몰라도 식당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TV를 보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문득 의문이 들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염소로 만든 탕이 염소탕이면 하수 처리 과정 후에 잔류 염소(chlorine)가 남은 수돗물을 끓여도 염소탕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엄마는 TV 화면 속 뉴스보다 더 황당한 소리에 외조부님과 똑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한술 더 떠서 말했다.


“아니, 그럼 그것도 염소탕이라고 부르면 이미 물에 ‘염소’라는 재료가 들어가 있어서 그냥 끓이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밀키트’라고 해도 되는 걸까?”


“음… 그냥 먹으면 안 될까? 아님 TV라도 보던가”


옛날로 돌아가서 외조부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떤 반응이실지 의문이다. 아마 말없이 마당에 있는 알로에를 떼와서 요구르트와 함께 드시고 방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여러모로 죄송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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