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총량의 법칙
무언가에 꽤 진심이었다. 큐브를 하루에 몇백 번씩 맞췄고 영화를 영화관에서 연달아 두세 편씩 봤다. 천체를 전공보다 열심히 공부하기도 했다. 많은 것들이 취향 과녁에 꽂혔다.
파랑도 갈수록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특히 ‘코발트블루’를 중심으로. 여러 의미를 지닌 파랑 중에서 나에게는 의미도 없이 이름만 있는 이 색은 어떻게 나를 파랑에 진심인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요즘은 이 색을 마주치면 반가우면서도 덜컥 겁부터 났다. 시에서는 이름을 부르면 꽃이 된다고 하던데, 반대로 이름이 있으니 더 멀어졌다. 오래 좋아하려면 약간의 거리 두기가 필요했다. 맹목적인 애정은 동시에 감흥이 같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코발트블루’는 확실한 만큼 떠나보내기도 쉬운 색이니까. 취향은 당연히 변하는데, 매번 새로운 걸 좇으면서도 꾸준히 있도록 남겨두고 싶었다. 애정의 크기가 커질수록 한 곳만 바라보느라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아쉬움은 남아있지 않았다. 길에서 만난 꼬마 친구와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동안 큐브를 맞춰주고, 별은커녕 가로등 불빛만 보이는 서울 하늘을 종종 올려다본다. 필름 사진을 찍기 시작해서 영화도 함께 좋아하게 됐고, 꾸준한 게 제일 힘들다던 나는 필름 카메라를 몇 년째 쓰면서 몇백 롤 몇천 장 현상한 사람이 되었다. 애정은 어느 형태로든 늘 남아 있다.
종종 익숙한 냄새에 파묻히고 싶을 때도, 향을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 게 아니라 그냥 묻혀둔 향이 옅어질 뿐이었다. 빛이 바래고 냄새가 날아가면 붓 자국 위로 색을 덧입히고 향수 레이어링 하듯 새로운 향을 뿌리면 된다. 어차피 삶은 기워 입는 누더기 인생인데 이유야 덧붙이면 그만, 취향이야 찾으면 그만- 모두가 오늘도 파란 하루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