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놀지 않았는데.
지나가는 하루 중에 어떤 하루.
나는 놀지 않았는데.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요즘 부쩍 일이 쌓여있다.
한 끼만 먹어도 입이 다섯 개라 숟가락도 다섯 개여서 그런 건지, 1초도 눈을 뗄 수 없는 막내 때문인지.
나는 놀지 않았는데.
건조기에 있던 빨래들은 빠르면 하루, 늦으면 이틀 뒤에야 꺼내고. 아이들의 부탁에도 지금, 당장 해 줄 수 있는 여력이 없어서 내일까지 해놓을게 라고 말하고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일마저도 내 순서는 언제나 아이들, 남편 다음이고.
그러다 보면 내 순서가 안 오기도 한다.
그렇게 지내다
옷을 사고 싶어! 오늘은 일이 쌓이더라도 결제를 하고 말겠어! 다짐하고는, 마음에 쏙 드는 같은 디자인의 다른 컬러의 옷을 두벌이나 야심 차게 결제했는데, 다음 날 아침 결제 취소 문자가 날아들었다. 나는 결제 취소 문자가 반갑다. 나의 쓸데없는 지출을 적극적으로 방지해주니까. 원하던 옷을 얻지 못했는데, 그 옷이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내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품절이 되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또 사람답게 멀쩡히 살아갈 날이 돌아오겠지. 오늘은 막내 옆에서 낮잠을 재우다 30분을 자고 일어났는데, 날이 추워져서 두꺼운 겨울옷들 덕에 빨래는 또 쌓여있고,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났는데, 어제저녁 설거지에 오늘 아침 설거지까지 가득이다. 나는 놀지 않았다. 글을 쓰지 않고, 설거지를 했더라면 마음이 편했을까. 이렇게 쓰는 동안, 나는 놀았던 걸까.
커피 한잔이 식은 걸 보니, 너무 오래 쉬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