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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토프 Dec 12. 2023

평범한 하루 - 1

나는 행동하는 사람

 하교하고 온 둘째에게 서둘러  양치를 시키고,  오후 진료 시작시간에 늦지 않으려 바쁘게 걸었다.

요즘처럼 추웠다가 따뜻해지는 기온의 변화에 모두가 비염인인 우리 집 식구들은 번갈아 병원을 찾는다. 식탁 위에 놓인 약봉투는 언제쯤 자취를 감출까. 서둘러왔지만 예약환자가 있어서인지 대기 10번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는 편하게 의자에 앉아 오랜만에 둘째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집에 오면 숙제하고, 유튜브 보고, 아이브 포토카드보고, 간식 먹고, 다이어리 꾸미고, 거울보고, 친구들이랑 연락하느라 바쁜 둘째. 둘째는 다른 집 딸들에 비해서 종알종알 먼저 얘기하는 편도 아닐뿐더러  예민한 구석도 별로 없고, 타인에 의해서도 크게 동요되지 않는 자신감은 없지만 자존감은 탄탄한 녀석이다. 내 어릴 적을 생각하면 이 아이의 성격이 부러울 때도 있다. 그 단단함이.

 

 나는 주로 추웠는지, 더웠는지, 급식은 맛있었는지, 배는 부른 지 묻는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먼저 묻지 않는다. 오늘도 급식은 먹을만했는지 물었더니, 냉큼 딸기가 맛있었다며 5알을 먹었다고 신나게 말을 하는 아이였다. 엊그제 분명, 딸기가 잔뜩 올려진 케이크를 만들어 먹었을 텐데...

 아이가 고기를 잘 먹는 걸 아시는 선생님께서 가끔 아이가 더 요구하지 않아도 챙겨주실 때가 있었다. 이번에도 혹시 선생님이 많이 주셨냐 물었다.


 "아니. A가 딸기 더 받을 사람은 손들라고 해서 다른 아이들이 손을 들었거든? 근데 난 손을 안 들었는데도 더 줬어."

 "A가 너 좋아하나 봐~~~~"

 "아니야."

 그린라이트라며 설레발치는 푼수엄마가 무안할 정도로 내 아이의 대답은 단호박이었다.

"A는 요즘 안 혼나지? 어떻게 2학기 되더니 갑자기 바뀌었을까? 근데 진짜 아니야? 너 많이 먹는 거 알고 많이 먹어라~~~~ 이런 느낌으로  더 준거야 그럼?"

"어."

"좋아해서 더 준 게 낫지 않냐?"

"아니."

"많이 먹고 살쪄라~~ 이게 낫다고?"

"어."


아무리 놀리려고 해도 방어벽은 뚫리지 않았다. 진료를 마치고, 아이가 다이소에 가서 스티커쇼핑을 하자고 조를까 봐 먼저 집에 들여보내고는 시장으로 향했다. 카트를 끌고 제법 따뜻한 날씨에 발걸음 가볍게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가장 좁은 길목을 지날 때였다. 사람 두 명이 서면 찰 정도로 폭이 좁은  길목에  길이 막혀버렸다. 당근이 담겨 있던 박스 바닥이 젖는 바람에 쏟아져 나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내 발 앞에 떨어져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쭉 훑어보니 아주머니는 상자에 급하게 담느라 정신이 없으셨고, 당근무더기는 나와 멀리 있었다. 당근무더기 뒤로 사람이 열댓 명 멈춰서 있었지만 아무도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이거라도 돕자 싶어서 나부터 허리를 숙여 옮겨 넣을 상자입구를 넓게 접어두고는 내 발 앞에 떨어진 두 개의 당근을 잡아 상자에 넣었다. 그 뒤로 몇몇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더니 금방 바닥에 있던 당근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빠르게 흘러갔다. 정작 도운이들은 아무 말 없었는데 그 뒤에 지나가던 중년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어째 점점 좁아지는 거 같아"

그 찰나의 불편함을 못 견디고, 허리도 굽히지 않았으면서 불평을 늘어놓는 그 사람들을 뒤에서 흘기고는 카트가 다른 사람들 발에 차일까 조심조심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누군가 행동하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과 행동하지 않으면서 불평을 입 밖으로 내는 사람들이 어쩌면 나보다 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걸까.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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