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엄마는 다 알고 있었어.
내 아들의 여자라고 쓰면 안 될 것 같은데...
3개월 전인가..
내 옆에서 카톡을 보내던 아이의 대화배경화면에 낯선 여자가 있었다. 그동안 이 소년을 좋아해 주는 여자애는 있었는지 알 길이 없고, 좋아하는 여자애도 없었을뿐더러 본인 혼자 모쏠인 거 같다고 심각해하는, 내가 낳은 만 12세 소년에게서 낯선 모습을 보았다. 보려고 본 것도 아니고 옆에 있어서 보였고, 단지 나의 순발력과 관찰력이 뛰어났을 뿐. 그리고 나의 추진력 또한 뛰어났었다.
"누구야?"
누구야 한마디에 둘 사이에 전쟁이 날 뻔했다.
아이는 아주 오랜만에 나에게 신경질을 냈고, 나는 누구냐 묻지도 못하냐며 더 크게 소리 질렀다.
"엄마가 이동욱 좋아하고, 동생이 아이브 좋아하는 것처럼 그냥 말하면 되는 거잖아. 왜 이런 걸 부끄러워해. 그게 더 이상해!"
아이는 벌게진 얼굴을 하고는 입을 닫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열심히 씻었다. 매일 감으라고 잔소리를 해대도 감지 않은 머리덕에 여드름이 점점 더 퍼질 때는 자기 발로 순순히 욕실로 들어가지도 않더니만. 이상하리만큼 매일 머리를 감았다. 뒤통수는 눌리지 않았는지 뻗친 곳은 없는지 확인도 하면서. 이런 것도 사춘기인 건가. 드디어 이성에 눈을 뜨고, 외모를 신경 쓰기 시작하는 건가. 그동안의 행동들이 내 머릿속을 스쳤고, 다음날 나는 두고 간 아이의 휴대폰을 열어 내 눈으로 그 낯선 여성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멀티프로필 덕에 나한테는 손흥민선수만 멋지게 보였던 거였다. 내가 목격했던 친구들과의 카톡방 배경화면은 나도 좋아하는 트와이스의 사나였다. 둘째가 트와이스 뮤직비디오를 볼 때마다 엄마는 사나 가 제일 예쁘다고 해서였을까. 내 픽과 같다니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폰을 놔두고, 그날부터 더 적극적으로 광고에 이동욱이 나올 때면 미소를 보이고 기뻐하며 아이에게 티를 냈다. 사람 좋아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걸 꼭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아들은 내가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꽁꽁 숨겨두고 3개월을 보낸 것이다.
그러다 오늘. 하교해서 돌아온 아이가 공부하다 말고는 갑자기 벌게진 얼굴로 할 말이 있다며 내 앞에 섰다.
"뭔데? 어제 그 수학시험보다 더 충격적인 거야? 표정이 왜 그래?"
"너무 오래 지나서 말하기가 좀 그런데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근데 어떻게 말하지?"
어쩔 줄 몰라 입술을 만지는 키 170에 변성기 3년 차 만 12세 여드름소년을 보니 웃음이 터졌다. 저 얼굴로 고백이라도 하면 다 차이겠는데 라는 생각과 함께.
"그때 그 카톡화면 그거 사나야."
"근데 그걸 갑자기 왜 얘기해?"
"A가 원래 아이돌에 관심 없었는데, 내가 사나 좋아한다고 말한 뒤부터 아이브에 관심을 갖더라고."
A는 학교 안에서도 밖에서도 존댓말을 쓰는 우리 아이만큼 바른 친구이다. 둘째의 아이브 포토카드 중에 중복되는 카드가 있으면 그 친구에게 선물로 주기도 하는 제일 교류가 많은 친구이다.
"아... 근데 부모님이 아이브 좋아하는 걸 싫어하시지는 않는데?"
사나는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지 나의 관심은 그쪽 부모님의 심경으로 옮겨갔다. 괜히 티브이도 안보여주고 키운 아들 친구 때문에 이 돈 저 돈 써가며 덕질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 싫지는 않으셨을까 신경이 쓰였다.
"그렇진 않으신 거 같아."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리고 연예인 좋아하는 거 이상한 거 아니니까 솔직해져. 숨기는 게 더 이상해. 근데 왜 갑자기 얘기하고 싶어졌어? 친구들도 아는걸 엄마한테 말 안 해준 게 미안했어?"
"아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말대로 숨기는 게 이상한 거라는 생각."
참 멋진 녀석이다. 그런데 왜 너 좋다고 하는 여자애는 없는 거니? 이것도 또 내가 모르고 있어야 되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