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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토프 Dec 16. 2023

아들이랑 안 맞는 것 같아서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사주에 쓰여있더라...

언젠가는 셋째의 이야기를 쓰게 되겠지...

아직은 아닌 것 같고...


지난 추석,  남편이 아이 셋을 데리고 호기롭게 시댁으로 가주는 바람에 나는 혼자 2박을 보냈다. 1박은 불안에 떨어있었고, 1박은 분노에 활활 타올라 오랜만에 생긴 나만의 시간은 상이 아니라 벌 같았다. 첫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소파에 누워서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 밤산책 말고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았다. 밤공기 마시며 유유히 걷는 게 참 좋다.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라 더 꿀맛이겠지. 삼삼오오 벌개진얼굴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보면 또 잠깐 외로움이 스치기도 한다. 그리고 노랗고 빨갛고 파란 불빛들이 반짝일 거 없는 내 인생과는 달라서 그 공간 속에 오래 있고 싶어 진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복권도 추석대목을 노릴만한 날이었다. 기분 좋게 2만 원어치를 사고는 남은 3만 원을 들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본다. 첫 번째 역을 지나 두 번째 역에 도착했다. 이렇게 걸어도 20분이 안 걸렸다. 더 번화한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북적인다. 멀리 사주, 궁합 글자가 눈에 띄었다. 답답한 날은 한번 봐줘야지 싶어서 슬쩍 메뉴판을 봤다. 궁합은 4만 원... 셋째와 내가 잘 맞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만원이 모자랐다. 로또로 괜히 기분을 냈나. 에너지바를 드시는 역술가님에게 천천히 봐주셔도 된다며 자리에 앉았다. 돋보기안경을 쓰신 엄마뻘의 역술가셨다.


"아들 때문에 너무 답답해서 저랑 맞는지 보고 싶은데, 제가 3만 원밖에 없어서요. 계좌이체도 못하고요. 아들사주만 볼까요? 어린데 봐도 되는 걸까요?"

애들 사주는 보면 안 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거 같기도 하고, 아이이름 지을 때 대충 사주를 말해준 것 같기도 하지만 좋은 말만 해줘서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었다.

"어휴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아들이 있어? 얼마나 답답하면 그래? 봐줄게요~ 여기다 써줘요~"

"아.. 셋째예요. 첫째랑 9살 차이 나는 늦둥이인데  제가 자만했나 봐요. 힘드네요. 같은 띠면 궁합이 좋다던데 아닌 거 같아요"

 셋째라는 말에 또 한 번, 내 나이에 또 한 번, 첫째 나이에 또 한 번 놀라시더니 쭉쭉 써내려 가셨다.

 "강하고, 강하고, 강하네."

 "네? 강한 기질인 거는 알고 있었는데 강한 게 3번이나..."

 "똑똑하고 영특하고 이쁨도 많이 받고  돈도 엄청 잘 벌겠는데, 남의 말은 안 들어~ 다른 사람이 얘기해도 소용없어. 안 받아들여."

"네 그래서 기관생활도 힘든 거 같아서 홈스쿨도 생각하고는 있어요~"

"18살까지는 안 꺾이고 자기맘대로겠어. 45살부터는 좀 낫네."

45살이면 40년 후... 아마도 내가 저세상에 가고 나서 이 아이가 한풀 꺾이는 건가 싶었다.

"근데 저 예전에 아이가 이랬는데 왜 셋이 됐을까요 남편 쪽에 애가 있으면 이렇게도 되나요?"

7년 전쯤 3시간 기다려서 받은 사주에는 아이가 둘이라고 했었다. 그렇게만 믿고 지냈다.

"엄마 사주가 이게 먹고사는 게 풍족하다는 것도 되는데 자식도 많이 낳을 수 있다는 것도 돼. 근데 낳을수록 엄마는 힘들어져. 그리고 지금 힘드네. 셋째 때문이 아니야. 자기는 깔려있는 게 있어. 25살부터 안 좋았고 45살부터 풀려. 지금 엄청 힘든 시기가 맞네~"

"아 셋째 때문이 아니에요? 25살에.. 남편을 만났죠. 남편 때문 일거예요. 45살... 아직 5년 남았네요. 버텨야죠 뭐."

"그 뒤로는 좋아."

"네 저는 말년은 좋다더라고요. 70세요."

 죽음을 두려워할 나이에 팔자가 좋으면 얼마나 좋으려고 이러나 싶기도 하지만, 말년이 좋은 게 진짜 좋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답답해서 내 발로 들어가 앉아서 받은 사주이지만 결국 결론은 어려운 시기 버티는 수밖에 없구나...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로 갈까 신나던 발걸음은 어디로 갈지 몰라서 방황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불빛은 번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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