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5대 독자의 집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거대기업의 연쇄부도 늪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다. 만덕의 시아버지는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고, 시어머니는 돈이 될 물건들만 챙겨 혼자 도망가버렸고, 만덕과 아들은 남들의 눈을 피해 겨우 몸만 빠져나왔다. 우애 깊은 만덕의 동생들이 딱한 누나의 사정을 두고 볼 수 없어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아씨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라는 거야!"
만덕의 아들은 곱게 자란 티를 내며 버럭 성질을 부렸다. 만덕은 자신이 아들을 잘못 키운 탓이라며 동생들에게 미안하다 전했다. 그래도 몸 뉘일 곳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던 아들은 그날 밤 들어오지 않았다. 만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일주일 내내 돌아다녔지만 고생 한번 안 해본 고운 얼굴 때문에 비아냥거리는 소리만 실컷 듣고는 집에 들어왔다.
"계십니까~"
찾아 올 사람이라고는 동생들 밖에 없던 터라 낯선 목소리에 만덕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경찰입니다~"
경찰이라는 소리에 만덕은 무언가 감이 잡혔는지 얼른 문을 열어 물었다.
"저희 아이 때문에 오셨나요?"
5대 독자는 남의 차를 훔쳐 술을 마신채 운전하다 사람을 셋이나 치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신분증은 있었지만 연락처와 거주지가 불분명하여 아들의 죽음을 이제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말을 하지 않는 것 인지, 하지 못하게 된 것 인지 알 수 없으나 말하는 것조차 아들 때문에 목숨을 잃은 그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염치없는 것 같아 스스로 입을 굳게 닫았다.
만덕은 남은 인생을 아들의 죗값을 본인이 치르기로 했다. 동생들까지 손가락질당하지 않도록 매정하게 인연을 끊고, 자신의 몸이 성하지 않은 날에도 남을 돕는 일에 힘을 보탰다. 자잘한 돈을 벌어서 묵직한 돈이 되어도 본인에게 쓰는 일이 없었다. 죽을 때까지 아들이 지은 죄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 여기며 30년을 그렇게 살았다.
"어렵게 번 돈으로 목숨을 잃지 않게 도와준 자가 다섯이 있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굶지 않도록 스무 해 가까이 음식을 해다 주었고, 본인 몸이 멀쩡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는 남아있던 재산마저 음주운전으로 가장을 잃은 가족에게 전해주고는, 매일 폐지와 빈병을 주우며 하루하루 연명했군."
저승사자는 심만덕 할머니의 여생에 설명을 보탰다.
"이렇게 쌓아 올린 덕을 제가 감히 누리다니요? 전 저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걸요."
"아들은 이미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다. 본인도 지옥으로 가겠다는구나. 죽어서도 아들 곁에서 같이 벌을 받겠다는구나."
지옥에 가겠다는 할머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위에 계신 분들이 크게 감명받으셔서 귀하디 귀한 귀인을 살린 너에게도 특혜를 내리신 거다. 저승으로 가기 전 이곳에서 3일간 머무를 시간이 주어진다. 그동안 너는 네가 살아온 시간 중에 다섯 번. 돌아가서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돌아가서 살아 본다고요? 그럼 제가 살아온 인생을 바꿔놓으면...제가 깨어난 뒤의 상황도 바뀌어있나요?"
"그 정도로 관여할 수는 없지. 다만 네가 그 시간에 돌아가서 너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긴 있을게다. 바꿀 수 없는 것도 물론 있을 거고. 몇 가지 규칙이 있다. 네가 돌아간 과거에서의 1년은 이승의 12시간이다. 3일의 시간이 주어졌으니 6년을 지내다 올 수 있다. 두 번째는 지금 너의 능력은 그곳에서 발휘되지 않는다. 능력밖의 일을 저지르려고 하거나, 다른 이의 운명을 거스르는 경우 그 기회는 종료된다.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엉엉 울거라. 네가 소리 내서 우는 순간 돌아올 것이다."
"제가 거절한다면요?"
"어차피 너는 3일 뒤에 깨어나게 되어있다. 이곳에서 3일은 머물러야 한다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 암흑에서 3일을 지낼 수는 있겠느냐?"
"3시간이면 될 것 같은데 3일은 어렵겠죠?"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로또나 주식 같은 건 꿈도 꾸지 말거라."
"역시... 안 그래도 로또 생각이 잠시 났다가 외우고 있는 번호가 없어서 바로 포기했어요. 다 들여다보고 계시네요 정말. 음... 정했어요! 첫 번째로 갈 시간이요!"
"너무 빠른 결정 아니더냐? 후회하지 않겠느냐?"
"네.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자 가장 무서웠던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에요. 다시 가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