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토프 Sep 09. 2024

금요일

일곱 살의 수정-3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나의 계획대로 라면 아빠는 무조건 3일을 나와 함께 집으로 귀가해야 하는 따뜻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시절 직장인에게는 권리가 없었다. 회식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말이다. 1990년에도, 한참이 지난 나의 현생에도 없어질 듯 남아있는 회식. 회식만 아니었어도, 같은 집에 사는 아빠가, 오랜만에 나를 보고 많이 컸네~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거다. 회식만 아니었어도, 엄마들이 당연한 듯 모든 집안일과 육아를 눈뜨고 눈감을 때까지 도맡지도 않았을 거다. 얼마나 가족 같은 회사를 만드려고 부어라 마셔라 술로 기강을 잡고, 단합을 했던 걸까. 일곱 살의 몸으로 우리 아빠 좀 집으로 보내달라고 술자리에 가서 행패라도 부리면 술문화가 바뀔까. 대학시절, 인턴으로 근무하던 곳에서 다른 결의 회식을 경험한 적이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으며 모두 제정신인 상태로 즐겁게 퇴근했다. 밤과 술과 택시가 회식의 절대적인 3요소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굉장한 충격이자 깨달음을 준 사건이었다. 어느 리더는 직원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틀을 깨부수고 다시 만들었다. 독도가 우리 땅인 것만큼 널리 널리 알리고 싶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다지 달라진 건 없다. 회식을 거부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아직 악마 같은 상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상사는 금요일이 아니라 자신의 연차 전날을 회식날로 잡는다. 하... 나는 지금 일곱 살이라서 안타깝게도 할 수 있는 욕이 없다.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고 싶은 심정이지만, 일단 정신 차리고 거절 못하는 물러터진 아빠부터 잘 간수해 보기로 했다.


"수정아 아빠가 안 오시네? 어떡하지?"


"저 집에 전화해 볼게요."


학원에 다닌 지 2주가 지났다. 한 달은 채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믿는 게 아니었다. 집에 전화하면 엄마한테 들을 소리는 뻔했지만, 그렇다고 일곱 살이 걸어서 15분 거리를 혼자 가는 건 불가능했다.


"이 사람은 연락도 안되고, 또 어딜 간 거야. 수정아. 빨리 걸어. 미정이 윗집에다 맡기고 온 거란 말이야."


엄마는 내 손도 잡지 않고 앞장서서 재빠르게 걷다가 뒤를 돌아 힐끔 한번 나를 돌아보고, 다시 걷고, 다시 돌아봤다. 나는 입이 삐죽 나온 채 빠르게 걸었다.


"입은 또 왜 나왔어? 그러길래 왜 먼데를 골라가지고 이 사단을 만들어?"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해서는 엄마를 째려봤다.


"어디서 눈을 그렇게 떠?"


엄마의 꿀밤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나는 '악'소리도 내지 못했다. '엉엉' 울 것 같아 두 손으로 내입을 막았다. 빨리 크고 싶었다. 아니, 빨리 크면 안 된다. 그럼 아빠가 더더욱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 거니까.

7시가 되고, 8시가 되어도, 9시가 되고, 10시가 되어도 전화기는 울리지를 않는데 엄마는 한참을 전화기 앞에서 서성였다. 아빠가 또 어디 가서 사고를 치지는 않을까 사고를 당하지는 않을까. 나는 그런 엄마를 바라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은 신나게 변신로봇을 가지고 논다. 이부자리에 누워서도 꺼지지 않는 거실불이 문틈사이로 새어 나와 잠이 오지 않는다. 드디어, 전화벨이 울린다.


"회식을 하면 한다고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수정이 학원에도, 집에도 먼저 말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언제 들어올 건대? 걸을 수는 있니? 아휴 지겨워. 잔말 말고 당장 들어와."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아빠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길바닥에 쓰러져서 잠들지는 않을까. 엄마가 죽자 살자 덤빌 텐데 싸울 힘은 남아있는 걸까. 오늘이 결혼액자가 부서지는 그날인가.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30분이 지났는데 왜 안 들어오는 건대? 거기서 여기까지 10분이면 오는데. 미치는 거 보고 싶어?"


기억이 났다. 이런 전화가 네다섯번은 오가야 아빠는 집에 왔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집에 가기 싫어서 "엄마~ 5분만"을 네다섯 번 외치고 나서도, 만족스럽게 놀지 못한 얼굴을 하고 엄마손에 집으로 끌려가는 모습과 그다지 다를 게 없다. 엄마는 한 번 말할 때 행하지 않으면 1단계가 아니라 5단계의 화력부터 끌어올리는 사람이었다. 5단계의 상태로 아빠의 전화를 네다섯 번 받고 나면 10단계가 완성된다. 아빠는 블랙아웃이겠지만, 엄마는 10단계의 화력으로 싸우는 거다. 아빠의 술버릇이 귀가 후 수면이면 좋았으련만, 아빠는 블랙아웃이 오기 전에 최선을 다해서 떠들었다. 어차피 하루가 지나면 기억도 못하는 사람을 붙잡아두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쏟아부었다. 내가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 10단계가 완성되었다.


"으휴 뭐 하러 들어왔냐? 왜 아주 거기서 살지? 어!"


들어오라고 하고는 들어오면 혼나는 것도 우리 집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중에 하나다. 하라는 대로 해도 혼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혼나는 것은 아주 익숙한 상황이다. 나는 모두가 잠들어야 잘 수 있었다. 내가 눈치가 빨랐던 건, 잠들지 않고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모두 다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동생은 어쩜 그렇게 뒤척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던 걸까. 30년이 지나고 저 둘이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어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이좋게 여행이라도 다니는 부부가 될 거 라는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그럼 나한테도 좀 알려주지. 내가 불안에 떨며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그래도 이번생은 저 둘이 헤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지낼 필요가 없다는 걸 감사해야 하는 걸까. 집안의 물건이 몇몇 부서지더라도, 내가 잠을 자지 못하더라도, 할머니가 싸움을 말리러 오셔도, 나도 무서운데 동생을 애써 안심시켜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저 둘은 얼마뒤에 아들 하나를  더 낳고, 또 10년을 매번 같은 일로 싸울 테지만 결국엔 막내아들의 결혼식까지 나란히 혼주석에 잘 앉아있을 거라는 사실을 난 알고 있으니까.

 오늘밤은 내 아들 유연이가 너무 보고 싶다. 누워있는 나를 보며 얼마나 떨고 있을까. 부부가 살면서 한 번도 싸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나를 똑 닮은 유연이에게는 나와 같은 기억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나처럼 어른이 돼서도 또렷이 기억할 아이니까. 망각은 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내가, 둘이나 있으면 나는 더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엄마, 아빠처럼 매일이 전쟁 같은 부부생활을 하지 않으려고, 내 입에서 엄마가 쓰던 언어가 나오지 않게 하려고,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머리도 거치지 않고 나오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아있었다.  우울증에 걸린 아내와 소통이 되지 않는 남편이 나오는 장면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고, 한마디 하려는 남편에게 능글맞게 다가가 화제를 돌렸다. 부모는 부모도 모르게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

 내 목표는 더 또렷해졌다. 부부싸움은 막을 수 없을지언정, 빌어먹을 술 때문에 아빠가 일자리를 잃는 것은 막아야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