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던 프러포즈

슬퍼서 기쁘게 쓰는 연애

by 에토프

우리는 놀이공원에서 야간개장시간까지 남아 지칠 때까지 놀았다. 둘이 찍은 사진도 꽤 많아졌다. 어느샌가 나의 팔이 그의 어깨에 올라가 있었고, 그의 팔은 내 허리 한쪽을 감싸고 있었다. 얼굴의 한쪽면이 닿아 있는 사진도 있었다. 아마도 사진을 2백 장 찍었을 무렵부터 나 혼자 사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가 나를 좋아하는 만큼, 나도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와 사귀는 것이 행복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연애 초기에 보이는 남자들의 공통적인 행동들을 그에게서 좀 더 오래 지켜보고 싶었다. 예를 들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올 것 같은 태도나,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은 콩깍지가 씐 사람에게나 보이는 그런 행동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고백하고 싶었지만, 그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놀이공원 데이트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저녁 산책을 함께했고, 내가 혼자 있기 싫을 때마다 그는 달려와 주었다. 퇴근하는 길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있잖아. 나 이제 그 사람 생각이 안 나."


"너, 어디야?"


"이제 막 학원에서 나왔어. 버스 기다리고 있어."


"나 금방 가니까, 정류장에서 기다려. 딱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10분쯤 지났을까, 택시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택시에서 서둘러 내린 그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게 순서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오빠의 눈은 약간 반짝이고 있었다. 짝사랑의 끝을 직감한 남자의 눈빛이 기쁜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우리 사귀자. 깔끔하게 오늘부터."


"고마워. 기다려줘서."


우리는 손을 잡고, 버스를 기다렸다. 아는 학생이 지나가든 말든, 내일 학원에 소문이 퍼져도 상관없었다. 자랑하고 싶을 만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6년을 만났다.

23살에 만나 내 나이는 29살이 되었다. 오빠는 31살. 가 호르몬에게 농락당하는 날을 빼고는 우린 작은 다툼도 없었다. 내 맘이 내 맘 같지 않은 그날엔 오빠도 조금은 힘들어했지만, 내입에 치즈 떡볶이를 넣어주고, 말없이 안아주면 무사하게 잘 지나간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제법 잘 대처했다.

나는 팀장급 강사가 되었고, 오빠는 졸업 후 2년 정도는 스타트업을 하며 실패를 맛보았지만, 지금은 꽤 잘 나가는 젊은 스타트업 대표로 성공했다. 오빠는 힘든 시기에도 여전히 똑같은 사람이었고, 그 모습이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옆에 오래오래 남아있고 싶었다.


오늘은 N서울타워에 가서 야경을 보기로 했다.

나는 높은 곳에 올라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를 사랑했다. 어두운 밤에 파티장같이 빛나는 야경은 더욱더 사랑했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곳에 가서 사랑하는 것을 함께 눈에 담았다.


"여기는 언제 와도 참 좋아. 그렇지?"


"나도 그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겨울에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나에게 가고 싶은 곳을 묻는 그의 눈이 평소와 약간 달랐다. 나에게 많이 집중한 표정이었다.

혹시 프러포즈를 하려는 걸까. 눈치는 어디 가서 절대 빠지지 않았던 나다. 아무래도 맞는 것 같았다.


"나 거기. 호텔 인대 아이스링크장 있고 주변에 나무들 조명 화려하게 있는 곳 있잖아.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아! 알아 알아."


"근데 오빠 스케이트 탈 수 있어? 난 못 타는데."


"난 스케이트 잘 타지."


"다행이다. 오빠도 못 타면 거기는 못 갔을 텐데."


그곳은 오래전부터 드라마를 보며 세뇌당하듯이 내 머릿속에 콕 박힌 곳이었다. 나는 꼭 저곳에서 프러포즈를 받아내겠다 생각하며, 스케이트를 타 보았지만, 나는 두발로 타는 것들에는 소질이 없었다. 자전거는 타도, 인라인이랑 스케이트는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런데, 오빠가 스케이트를 잘 탄다고 하니, 너무나도 기뻤다.

때마침, 겨울이었고, 우리는 결혼하기에 좋을 나이였고, 통장도 나름 알찼고, 무엇보다도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가 스케이트를 탈 수 있다는 것이 내 인생을 완벽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주말이 두 번 지나가는 동안에도 나는 그곳에 가지 못했다. 이번 주말에는 프러포즈를 해야 할 텐데 생각하며, 평일을 보내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에 네가 가고 싶었던 곳 예약했어.


기다리던 문자다. 드디어 그 순간이 오나보다.

나도 그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 마련했다.

토요일 저녁, 그렇게 바라던 곳에서 그는 나를 끌고 다니며, 아이처럼 웃어야 했는데, 웃지 못했다. 긴장 한티가 많이 났다. 계속 코트 안주머니를 만지작 거리기도 했다. 그는 나처럼 속이지 못했다. 내 눈에는 참 잘 보였다.

"자."


나는 장갑을 벗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 알았어?"


"오빠, 오빠는 티가 너무 많이나. 이벤트는 나한테 좀 배워."


그는 만지작 거리던 반지를 꺼내 내손에 끼웠다.


"결혼하자."


결혼 해 줄래? 보다 좋았다. 줄래? 는 뭔가 가벼운 느낌이라 싫었다. 고백하는 순간만큼은 박력 있어 보이는 말투가 더 설렜다. 이번에도 이 남자는 나를 만족시켰다.


나는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잘빠지지 않은 그것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자, 이건 내 프러포즈."


"이거... 청약통장. 이렇게 많이 넣었어? 언제부터?"


"돈 벌고 나서부터. 기특하지?"


그제야 그는 아이처럼 웃었다. 일사천리로 우리는 도장부터 찍었다. 한 달 뒤, 그 통장은 제 몫을 해냈고,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집을 먼저 얻고, 양가 상견례를 했다. 오래 만나온 터라 순서가 바뀌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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