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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Dec 20. 2023

정도를 걸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

로맹 롤랑



국적을 불문하고 

괴로워하고 싸우다가 마침내 승리할

모든 자유로운 영혼에게 바친다.

-로맹 롤랑 '장 크리스토프' 첫 페이지에서



19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은 소르본 대학의 음악사 교수였고 개인적으로 중국 작가 루쉰의 '아큐정전'을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고등사범학교 시절 스피노자 철학과 톨스토이 문학에 심취했다. 20세기 프랑스 문학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인 로맹 롤랑은 사회와 정치 등에 깊은 관심을 품었고 인간을 사랑했으며 인간의 자유를 가장 우선시한 사람이다. 그의 이러한 관심과 기호는 그의 대표작 '장 크리스토프'에 잘 녹아 있다.





글쓰기의 기본은 식견

로맹 롤랑이 음악사, 철학, 문학 등에 걸쳐 풍부한 지식을 소유했던 것처럼, 거의 모든 훌륭한 작가가 다방면의 식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이 그러한 폭넓은 식견을 소유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것이다. 


'세상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본 것이다.' 


이것은 글쓰기의 기본이자 바탕이며 뿌리이고 근간이다. 관심이 먼저이고 글쓰기는 그 다음이다.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깊이 들여다보면 생각이란 것이 더 풍요롭게 되고 이것을 통해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관심과 독서, 경험과 생각, 그리고 글쓰기. 이러한 과정은 식견이라는 것이 형성되는 선순환 고리라고 말할 수 있다.


관심 -> 독서와 체험 -> 글쓰기 -> 반복 -> 식견





식견이 결여된 자기 만족적 글쓰기

이러한 과정을 생략한 채 막바로 글을 쓰는 이들을 흔히 본다. 글을 쓴다는 대다수 사람들이 기껏해야 좁은 영역의 단순한 체험과 얕은 지식 수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주장의 우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타고난 재능이 있어 글솜씨를 가졌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만 있을 뿐 이들의 글은 사실상 읽을 만한 가치가 그리 크지 않다. 그저 자기 만족적 글쓰기, 다양한 독자를 가질 수 없는 글쓰기인 것이다.


물론 이런 글이 대중에 어필되는 경우는 더러 있을 수 있다. 서점에 베스트셀러라고 이름 붙여진 글 중엔 수준 이하의 책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베스트셀러가 다 베스트북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풍부하고 깊은 식견이 결여되어 있는 글이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선택되기도 하지만 그 책의 생명이란 거기까지일 뿐이다. 그런 책은 오래 갈 수 없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시대를 넘어 좋은 글, 훌륭한 책, 양서, 베스트북이라 일컬어지는 책은 단순한 베스트셀러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즉 작가 나름의 시견을 탄탄하게 갖춘 것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쉬운 길이 아니라 정도를 선택하라.

그러나 식견을 갖추는 일은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린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 길을 통과하지 않고 막바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고 싶은 욕망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마구 글을 써 내고 책을 집필하는 것이다. 운 좋게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들 자신에게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정도를 걷지 않고 얻은 전리품은 한 번으로 족하다. 요행으로 우연히 얻게 된 트로피는 다섯 번, 여섯 번, 열 번, 스무 번 받을 수 없다. 그러니 작가가 되고 싶다면, 정말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올바르고 정직한 길을 가야 한다. 그것이 스스로에게도, 글을 읽는 이에게도 좋은 일이다.


풍부한 독서량과 다방면의 체험, 숙고하기, 자신만의 통찰력을 갖추는 일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한 인간이 독창적이고 쓸모 있는 식견을 갖춘다면 그 영향력은 선하고 강할 것이다. 세계는 그런 인간을, 그런 작가를 필요로 한다. 그러한 이가 쓰는 글은 읽을 가치가 크고,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세상사 모든 것에 지름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빨리, 요행으로, 일정한 순서를 건너뛰어서 글을 잘 쓸 수 있는 요령이란 없다. 그런 것은 아예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힘들더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디고 고통스럽더라도 올바른 순서를 따라 차근차근 가야 한다. 향기가 있고 독창성이 있으며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준비하고 또 준비하라. 노력과 품을 들이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는 행복이, 독자들에게는 깊은 울림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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