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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Dec 23. 2023

좋은 글쓰기를 위한 특별한 책읽기

옛말에 삼다(三多)란 말이 있다. 즉 다문, 다독, 다상량이다.


- 다문(多聞) : 보고 들은 것이 많음.  


- 다독(多讀) : 많이 읽음.  


- 다상량(多商量) : 글을 잘 짓는 비결로 생각을 많이 해야 함.


이 말을 생각할 때마다 무릎을 탁 하고 치게 된다. 좋은 글을 쓰는 데 있어 이것 만큼 훌륭한 방법도 없으리라. 옛 사람들이 오늘날 현대인들보다 무지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조선의 문인들만 하더라도 오늘날 웬만한 대학교수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삼다에 충실했다. 심지어 10만년 전 수렵채집인들보다 오늘날 현대인이 인지 기능에 있어 우월하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므로 우선은 겸손하자.


삼다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 세 가지는 예나 지금이나 통용되는 훌륭한 작문 예비 단계라고 생각한다. 다문과 다상량에 관해서는 고칠 게 없다. 손 댈 게 없다는 이야기다. 견문과 체험은 글쓰기의 근본적인 자양분이며 숙고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글을 쓰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다상량, 숙고가 없다면 한 문제에 대해 깊이 들어갈 방법이 없다. 나는 두어 시간 책을 집중해 읽었다면 그에 비례해 두어 시간 정도 숙고하기를 권한다. 책이란 저자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나의 생각은 무엇인가. 그것을 알려면 숙고해야 한다. 이 과정을 생략하면 그저 남이 한 이야기를 한번 듣는 것으로 끝나 버리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나만의 특별한 생각, 특별한 관점, 독창적인 시각이 있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


숙고 할 땐 걷기를 권한다. 산책은 숙고에 있어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하체를 움직이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좋은 풍경을 감상하자면, 나도 모르게 생각이 샘솟는다. 뇌가 활발히 활동하기 때문이다. 다독자는 많지만 다상량을 하는 이는 드물다. 좋은 글이 드문 이유다. 다상량이 없는 다독은 사실상 생산성과 무관하다. 다독만으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문제에 관한 통찰도 가질 수 없다. 나는 다독하는 바보를 흔히 보았다. 다독하는 바보는 다독 없는 바보보다 더 고지식하고 더 폐쇄적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은 다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부심이 없는 바보보다 자부심 있는 바보를 상대하는 것이 훨씬 더 피곤하고 어려운 법이다.


다상량이 없는 다독자가 생산성이나 창의성, 식견이나 통찰과는 무관한 바보라면 다독 없는 다상량자란 몽상가일 뿐이라고 하겠다. 그는 끊임없이 모래성을 쌓는 이다. 그의 시각이란 공허하고 근본이 없어 주장이나 생각이 허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삼다란 늘 같이 운동할 때 좋은 영향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 가지가 결핍되거나 모자라면 좋은 글쓰기를 할 수 없다.


다독에 관해서는 흔히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SNS나 서점에서 100권 독파, 200권 독파, 300권 독파라는 문구를 쉽게 본다. 이것 만큼 쓸 데 없는 과장, 자랑도 없을 것이다. 하루 한 권 책읽기 같은 문구도 마찬가지다. 책은 하루에 독파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건 마치 로마라는 거대한 도시를 하루 만에 둘러본다는 허세와 같다. 그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령 시도한다 해도 큰 의미가 없다. 도시와 마찬가지로 책 역시 천천히 구석구석 둘러봐야 하고 관찰해야 하며 숙고해야 의미가 생긴다. 한 번 본 것을 다시 볼 필요도 있다. 다독을 여러 권의 책으로만 해석해서는 곤란한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두 번, 다섯 번, 열 번 읽는 것도 다독이다. 아니, 이것이야말로 다독의 근본이다. 쇼펜하우어는 쓸 데 없이 많은 책을 읽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갈한 바 있다. 나 역시, 단 두어 권이라도 좋은 책을 골라 여러 번 읽는 것을 권한다. 1년 내내 그렇게 한다 해도 글쓰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다독이다.


사실 책을 제대로 읽는 사람들은 여러 권을 읽지 않는다.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으려 하고 그러자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책을 과시형으로, 실험적으로 읽으려 하는 자들만이 100권 읽기에 도전하는 식의 허황된 일을 벌인다. 마치 100대 명산 투어를 벌이는 식이다.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결론적으로, 지금 나에게 필요한 단 한 권의 책을 신중하게 만나야 한다. 좋은 책은 많다. 그러나 내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좋은 책 한 권을 집기 위해 상당한 품을 들여야 한다. 물론 우연히 쉽게 그런 책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건 당신에게 주어진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책을 만났다면 읽고 또 읽어라. 다독하라. 다만 숙고하면서 읽어야 한다. 읽으면서, 다른 참고 자료를 찾아보거나 글에 관해 글쓴이에 관해 검색하는 것은 좋은 읽기 방식이다. 한 권의 책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찾아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안의 서'를 읽고 있다면 페르난두 페소아의 삶에 관심을 갖고 알아볼 수도 있고 20세기 초 포르투갈 리스본의 정치적 환경에 대해 검색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당신의 독서, 당신의 다독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요약

-한 권을 읽되, 제대로 깊이 넓게 읽어라. 그것이 다독이다.

-읽은 만큼 숙고하고 걸으며 스스로 그 의미를 알아가라.

-저자가 쓴 글을 나의 시각으로 재구성, 재창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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