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쓰고 싶은가? 좋은 글이란 좋은 책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좋은 축구란 좋은 기본 동작, 속도, 신체의 균형, 근력으로부터 출발한다. 기초를 다지고 경험이 쌓이고 몸이 숙련된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좋은 축구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좋은 글쓰기란 것도 좋은 기본기, 지력, 앎의 균형, 통찰, 정신의 근력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기초를 다지고 경험이 쌓이고 숙련된 단계에 이른다면 비로소 좋은 글쓰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글쓰기의 문턱은 모든 분야를 통틀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훈련 과정 없이 막바로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될 수 있다고 호언장담 하는 이는 없으나, 훈련 과정 없이 막바로 책을 써 보겠다고 하는 이는 많다. 훈련 과정 없이 펜싱 대회에 나가 보겠노라고 말하는 이가 없으나 좋은 글은 마치 지금 당장 써 낼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높이 올라가려 할수록 더 많은 희생을 요구받는다. 여기서 희생이란, 부단한 노력, 연습, 패배, 도약 등을 거치는 과정, 이러한 것들을 무한 반복하며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보통 바로 지금 좋은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글쓰기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순서를 지켜 성장해야 하고, 글쓰기 근력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서두를 필요는 없다. 오늘 시작했다면 해야 할 일을 천천히 그리고 빠짐없이, 부단히 수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니, 그냥 내키는 대로 쓰면 되지, 무슨 과정, 무슨 훈련 타령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생각을 굳게 믿고 있다면, 그냥 그대로 나아가면 된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결코 높이 올라갈 수는 없다. 이는 모든 분야에서 그러하다. 배드민턴을 쳐 보거나, 속기를 배우거나, 건축 혹은 프로그래밍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일정한 수련 없이, 과정 없이, 훈련 없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이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글쓰기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글쓰기란 혼자서 훈련이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혼자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수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혼자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렵고 난해하며 고독할 수밖에 없는 것이 글쓰기 훈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글쓰기를 목표로 삼았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내 생각에, 좋은 책을 가까이 두는 것이다. 서가에 널려 있는 책들 중 좋은 책을 골라 읽고 그것이 내 마음의 양식이 되도록 숙고하고 또 숙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 좋은 책은 어디 있을까?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골라야 할까?
어떤 책이 나에게 글쓰기를 위한 양식을 제공해 줄까?
나의 경우에,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이러하다.
첫째, 나의 호기심과 나의 궁금한 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는가?
둘째, 오랜 기간, 광범위한 지역의 독자들로부터 읽혔는가?
셋째, 전문성과 식견, 깊이를 보편적으로 인정받은 작가인가?
넷째, 독자들을 일깨우고, 자극시키며 성장하도록 만들 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가?
대략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킨다면, 그것은 좋은 책이라고 할 만할 것이다. (나의 경우에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런 기준에서 보자면, 좋은 책이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A에게 좋은 책은 B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좋은 책을 선택하기 위한 기본 조건은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책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싼 재화
반드시 내 돈을 내서 사라
나의 흥미를 끄는 좋은 책의 작가는 곧 나의 선생이다. 그가 나를 지적 천국으로 이끄는 천사다. 내가 지불하는 책 값은 나를 천국으로 이끄는 이에 대한 최소한의 비용이다. 단 돈 1만원으로 그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데 감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학에서 한 학기 수업을 받는 비용으로 1천만원 내외의 돈을 지불한다. 그에 비한다면 책 값이란 터무니없이 작은 비용이다. 한 인간의 삶의 정수, 지식의 정수를 체험하는 데 있어 단 1-2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면 된다는 것은 이 세상이 내게 제공하는 최고의 복지다. 어떤 이는 책을 빌려 읽는 걸 즐겨하는데, 나는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빌려 읽는다면, 두 번 세 번 읽기 어렵고, 1년 후에 그 책을 다시 꺼내 읽을 확률이 적어진다. 무엇보다, 그것은 나를 지적 천국으로 인도하는 선생에 대한 좋은 매너가 아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나를 희생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 속에는 돈의 지출도 포함된다. 나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한 선생의 죽음에 빈손으로 가는 이는 없듯이 책이란 바로 그러한 마음으로 손에 쥐어야 한다.
좋은 책의 기준은 바로 나다
좋은 책을 선별할 땐 우선 작가가 누구인지 봐야 하고, 둘째 그 내용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어느 책이든, 결국 읽는 주체는 나이기 때문에 우린 나를 중심에 두고 책을 선택해야 한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도 양서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린 저마다 다르고, 특별한 존재들이다. 관심 분야, 특기, 개성, 능력 등에서 한 인간은 고유하기 때문에 이것이 좋다, 라고 단정지어 말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나에게 좋은 책이란 나 스스로 정의내려야 하고 나 스스로 '북 리스트'를 채워 나가야 한다. 내가 읽은 책 목록은 곧 나 자신이며 내가 향후 써 나갈 글의 질을 결정할 우물이다. 그 우물이 깊고 넓고 맑을수록 내가 써 낼 글의 질이 좋아지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글을 써 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저마다 고유한 '북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리라. 나에게 영감을 준 작가, 나에게 동기부여가 된 책, 내가 글을 쓰는 데 있어 밑거름이 된 사상이 없는 작가는 없다. 모든 작가는 결국 책의 열매일 뿐이다. 좋은 작가는 시대를 넘어 좋은 작가를 낳는다. 결국 좋은 책이 좋은 작가, 좋은 글의 모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의 힘, 작가의 힘은 글에 있어 절대적이다. 이것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좋은 글을 써 낼 길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서점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절대 헛되지 않다. 한 권의 책을 고르기 위해 며칠을 헤매는 과정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 한 권의 책이 내 인생을 뒤바꾸어 놓는다. 마찬가지로 단 한 명의 작가가 내 삶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 그것이 책의 위대함, 작가의 위대함이며 궁극적으로는 글의 위대함이다.
나의 좋은 책 목록을 채워 나가라.
좋은 글 한 줄을 써 내려가기 위해 1년을 희생하라. 그것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경험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흩어지고, 어렵게 얻은 것이야말로 단단히 땅에 박혀 지워지지도 부서지지도 날아가지도 않는 것이다.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구독은 작가를 춤추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