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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양 Aug 09. 2022

통화보다 카톡이 편해진다는 건

'오늘만큼은 누군가와 통화를 좀 하고 싶은데'


엄마의 항암치료 소식을 들은 그날,

나의 이 슬픔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알 수 없는 분노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남편은 통화보다는 집에 가서 얼굴을 보고 말하고 싶었기에, 퇴근길 친구들 연락처를 훑어보는데 쉽사리 통화 버튼을 누를 수가 없는 나 자신이 당황스러웠다.


제일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예비신랑과 부산여행을 떠난 상황, 즐겁게 여행하고 있는 친구에게 굳이 나의 이 암울한 마음을 전달하는 게 옳은 것일까? 


다른 연락처를 훑어보니 아이가 있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지금 시간은 한참 저녁 준비하고 아이들과 밥 문제로 씨름할 시간이 아니던가

한참 정신없는 시간에 나까지 보탤필요가 있을까?


여러 사람의 얼굴이 머릿속에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포기하고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버렸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와 통화로 길게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다. 방문을 닫지 않는 우리 집의 문화 때문에 통화 내용은 가족들에게 오픈될 수밖에 없었고, 집에서 1시간 이상 통화하면 불편해하는 엄마의 반응도 나의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들었다.


"밖에 하루 종일 있다가 집에 오면, 가족들하고 대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긴 시간 친구랑 전화만 하고 있으면 엄마는 너랑 대화할 수가 없잖아" 


서운해하는 엄마를 달래고자, 집에서 전화를 받게 되면 30분 이내로 끊게 되었고 대신 친구에게 할 말이 있는 날은 밖에서 이동하거나 산책하면서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20대까지는 친구나 지인에게서 전화가 온다고 해도 싫은 적은 많지 않았는데, 30대부터는 전화 오는 게 뭔가 불편하고 받고 싶지 않은 기분이 강하게 드는 것이 아닌가

내가 전화받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다 보니, 뭔가 상대에게 전화를 걸 때도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곤 했다. 


전화 통화에 대해 지인들에게 고민을 이야기하면 "누군가 하고 연락하는 자체가 스트레스인 거 아닐까?"라고 질문을 던지곤 하였는데 그건 전혀 아니다. 네버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의 사소한 일상까지 공유하고 알려야 하는 ESFJ로써 카톡은 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매일매일 하고 있고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대화하는 것도 즐겁게 느끼고 있다. 


알람을 무음으로 해놔도 모든 카톡에 칼답으로 응답할 만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카톡을 한참 하던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오면 받기가 꺼려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점점 나 자신이 방어적인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일까?


전화는 실시간 소통으로 상대에게 집중해야 대화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는가. 가끔 멍 때리다가 상대의 말을 놓치는 경우도 있고 나는 통화를 그만하고 싶은데, 상대가 말을 끝내지 않을 땐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어릴 때와 달리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겪어가며 내 말에 상대가 상처받는 경우도 보았고, 반대로 별거 아닌 말에 내가 상처를 받는 경우를 경험하게 되었다. 


상대의 말 한마디가 내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경험을 하고 나면, 난 상대에게 말로 상처 주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겠다라고 결심을 하게 되고, 그 덕분에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뱉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이 친구는 지금 솔로인데, 내가 연애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면 지루하지 않을까?'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엄마랑 둘이 살고 있는 상황에서 내 말이 혹시라도 마음을 불편하게 한건 아닐까?'


'이런 말은 굳이 안 해도 되었을 것 같은데 괜히 했나?'


나이가 들수록 잘하고 능숙해지는 것들도 많지만, 인간관계는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하는 것 같아서 문득 씁쓸해진다. 아니면 좁아지는 인간관계 속에서 방어적인 겁쟁이가 되는 것일까 


"내가 부산에 여행을 가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런 상황 속에 서는 당연히 전화를 했어야지! 그리고 네가 우울한 말을 쏟아낸다고 해서 나까지 우울해지는 건 아니야! 내가 여행 중이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전화를 안 해! 전화해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해서 풀었어야지!!"


통화하고 싶었던 그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이렇게 다다다다 호통쳐주니 조금 위로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가끔은 내 사람들에게 카톡이 아닌 전화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자주는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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