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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양 Jul 29. 2021

수능이란, 나에게

수능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관계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중학교 3학년 시절 인문계가 아닌 상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진학이 아닌 취업 때문이었고, 

고등학생 때 취업반을 선택하면서 점점 더 수능은 나와 관계없는 단어가 되었다.


"3년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어!!!! 찹쌀떡인데 시험 꼭 잘 봐!"

수능을 보는 친구들에게 선물을 건네며 응원하던 그 순간에도 


"올해도 역시 수능 당일에 한파가 몰아칠 것으로 예상되어, 전국 아침 기온은 영하권으로.."

수능 한파에 대해 나오는 뉴스를 보던 순간에도 별 생각도 느낌도 없었다. 


수능 당일 아침, 매서운 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리며 회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도시락통을 든 중년의 여성과 고3으로 보이는 학생이 정류장으로 다가왔다. 


"엄마, 추운데 들어가~ 도시락 나한테 주고"

"버스 타는 것만 보고 갈 거야. 점심때 밥 먹기 힘들 것 같아서 죽으로 준비했어.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잘 보고 와"

"뭐야 그 말이 더 부담스러워!"


다정하게 대화하는 모녀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데, 이상했다.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 


몸을 움츠리게 했던 차가운 바람이 갑자기 내 마음을 훑고 지나간 기분이었다. 

시큰시큰, 왜 코끝은 갑자기 찡한 거지.


상업계가 아닌 인문계를 택했다면 나도 수능을 보았겠지?

출근을 하기 위해 회사로 가는 게 아니라, 시험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을까?

이렇게 매일 고객들과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라, 과제의 늪에 빠져있었겠지.


회사로 가는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고, 다정한 모녀를 뒤로 하고 난 출근길에 올랐다.

버스 창 밖으로 도로에 가득한 차들을 멍하니 보는데 중학교 3학년 그 어느 하루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등학교는 어느 쪽을 생각하고 있어?"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어느 날 아빠가 나를 불러서 물었다.


"음.. 글쎄요? 친구들처럼 인문계 가지 않을까?"

잠깐의 침묵,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 


"사실 아빠는 너를 학원에 보낼 수도, 대학교 등록금을 대줄 수가 없어. 형편 알잖니"

"지금까지 학원 거의 안 다녔고.. 괜찮을..."


"상업계를 가는 게 어떨까? 미안하지만 난 네가 고등학교 졸업해서 바로 취업을 했으면 해"

".. 아... 음.."

"미안하다. 아빠 능력이 이것뿐이라"


당황스러워서 머릿속으로 할 말을 찾다가,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황급하게 대화를 끝마쳤다. 

갈 곳을 잃은 내 시선 끝에 나를 향해 미안함으로 가득 찬 엄마의 표정이 들어왔다. 


부모님을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조금 그 상황이 슬펐을 뿐.  

어려운 집안 형편에 언제나 나에게 최선을 다했고 항상 모자란 것을 미안해하던 두 분이었기에.


그때의 난 지금 내가 걸어온 이 길을 선택했고, 한동안 수능이라는 단어는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언제나 선택의 순간, 하나의 길을 선택하면 다른 하나의 길은 가보지 못한 미지의 길로 남게 된다. 

한참 길을 걷다가 힘든 상황이 되면 가지 못한 그 길이 간절하게 생각나는 건 당연한 일.


내가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을까?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30대인 현재의 나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걸 보면 그때의 난 꽤나 괜찮은 선택을 한 것 같다. 


여전히 누군가 나에게 수능날 어떠했느냐라고 물으면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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