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잘 안다는 생각은 대개 착각입니다. 인류를 대상으로 하든 개인을 대상으로 하든 똑같습니다. 내 나이만큼 알아 온 부모님도 잘 모르겠고, 매일 보는 아내도 때때로 새롭습니다. 흉금을 털어놓던 친구도 흐르는 세월 속에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남들에게 나도 그러할 것입니다.
사람은 마치 구름 같습니다. 매일 보지만 한 번도 손에 닿은 적은 없습니다. 모양과 크기와 색이 제각각이고, 항상 움직이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합니다. 괜히 구름이 어색하고 하늘도 더 높아 보입니다.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깨달음 혹은 포기도 늘어납니다. 사람을 잘 안다는 생각은 위험하기도 하고, 평온한 일상에 괜한 물결을 만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는 씁쓸함이 가장 큽니다. 그래서 그 씁쓸함을 깨닫거나 기대를 포기하거나 합니다.
그런데 상황과 장소가 달라지면 또 바보처럼 리셋되는 것 같습니다. 브런치가 딱 그렇습니다. 브런치도 사람이 하는지라 일상과 다를 것 없으니, 기대도 실망도 내 탓입니다. 그런데 또 까먹고 기대와 실망을 반복합니다.
시작은 구독자 수천 명인 A 작가님이었습니다. 어느 날 A 작가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했을 때 느낌은 그냥 좀 신기하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틀 정도 후, 다른 작가님의 브런치로 가는 길에 A 작가님이 내 브런치 구독을 취소했음을 발견합니다. 이때에도 느낌은 내 글이 읽고 보니 별로였나 보다, 혹은 구독과 구독 취소 중 하나는 실수였나 보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고, 또다시 A 작가님은 내 브런치를 구독하고, 또 이틀 정도 후에 구독을 취소했습니다. 이유가 뭔지 몰라도 구독과 취소는 우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목적이 '구독자 낚시' 따위는 아니기를 바라며 실망을 덮습니다.
얼마 후 훨씬 더 직접적이고 이상한 일을 겪었습니다. 브런치 나우에서 읽은 에세이가 마음에 들어 구독했던 B 작가님의 돌변입니다.
다이어리에 대한 글을 쓴 날이었습니다. B 작가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하고 내 글을 라이킷 한 후, 이어서 댓글을 달았습니다.
"유정아빠님, 다이어리가 남아도신다면 좀 적선해 주실 수 있을까용? 택배는 당연히 착불이죵"
유정'아빠'라 칭했으니 예전 글 혹은 작가 소개를 읽으셨다는 뜻입니다. 이곳이 당근마켓은 아니지만 어차피 남는 다이어리 보내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라 보내드리겠다고 답장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작가 제안을 통해 보내기로 한 주소가 안 옵니다. 브런치 알림도, 카톡도, 메일도 없습니다.
퇴근길에 다이어리를 바리바리 싸서 종이가방에 넣고 달랑달랑 들고 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PC버전으로 브런치에 접속합니다. 혹시나 뭔가 다른 알림이 있나 해서 뒤져보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일이 갑자기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B 작가님의 첫 댓글이 지워졌다 했더니, 다이어리를 그냥 안 받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라이킷과 구독도 취소되었습니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 있습니다. 요구하지도 않은 구독과 라이킷으로 다이어리 값을 선불로 내시고, 주문 확인이 안 되니 환불한 셈입니다.
다이어리를 두 권씩 세 종류를 싸 왔는데, 연락이 안 와서 PC 앞에 앉았는데, 그래도 확인이 안 돼서 혹시나 하고 메일도 재등록하고 기다렸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일까요.
다음 날, B 작가님의 댓글은 모두 지워지고 내 댓글만 낙엽처럼 남아 혼잣말을 합니다. 재미있는 에세이로 채워진 줄 알았던 B 작가님의 브런치는 '븅신', '똥과 설사' 등의 단어와 공격적인 글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꿈을 꾼 기분입니다. 나는, 처음 보는 B 작가님을 안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고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구독 작가 새 글 알림' 기능입니다. 갓 발행된 따끈따끈한 새 글은 발행 당시의 시간과 날씨를 품어 공감의 깊이를 더해 줍니다. 좋아하는 작가님 글에 일등으로 라이킷을 누르면 성공한 덕후 같은 느낌이 듭니다.
가끔 여러 작가님들의 글이 한꺼번에 우수수 쏟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괜히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오늘이 무슨 날인가, 무슨 뉴스가 있나 둘러보기도 합니다.
'B 작가님 변신 사건' 이후로 알림을 꺼버릴까 고민하다 그냥 두기로 합니다. 알림을 타고 들어가면 여전히 좋은 글들이 넘쳐납니다. 타인의 인생이, 사유가, 감정이 후추처럼 글자에 묻어 있습니다.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느낌들은 적어도 글자로 쓰인 것보다는 많이 전해집니다.
문득, 기대를 안 하는 것이 깨달음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렇게 좋은 글이 많은데 기대를 안 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엔 누가 변신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을 뿐입니다. 만난 적 없는 여러 작가님들을, 지금 아는 모습 그대로 알기로 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