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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린 May 07. 2023

증조할머니 그리고 알사탕

#너무 그리운 증조할머니 


“할매, 하나님이 소원을 하나 이뤄준다고 하면 이루고 싶은 소원이 뭐야?”

“죽기전에 고향땅을 한번 밟아보는 거지머"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할매 델꼬 부산 가주께.조금만 기다려줘”

“하하하.. 그때까지 내가 몬산다..허허허"

“뭔소리여, 내 시집갈때 까지 오래오래 살아야지..그래도 대학졸업하는것은 봐야지 할매.."

대학교 가기 전날, 증조할머니랑 단둘이 침대에 누우면서 나눈 대화였다. 


경상북도 부산사람, 당시 이방 나라에서 9남매를 홀로 키워 억척스러운 삶을 사신 우리 할머니,  그 뿌리를 심어 4세대인 나와 오빠까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당시 내 나이는 19살, 집과 대학교거리 기차로 무려 1박2일, 한번 개학하면 방학기간에만 돌아올수 있었던 그 시절이였다. 매번 학교 가기전 잊지 않고 나한테 하는 말이 있다. 

“ 공부도 공부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밥 잘 챙겨묵고 건강 단디 챙기래이. 거기 가서도 기죽지 말고 " 하면서 자기가 아껴먹는 사탕을 몇개를 손수건에 감싸서 내손에 꼭 쥐어준다. 


그렇게 외딴 지역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 예상치 못한 어려움으로 여러 난관들이 부딪쳤을때 마음도 데여보고 , 상처도 받아보고 , 무관심도 받아보고 그럴 때마다 늘 우리할머니가 생각난다.


우리 할매도 한번쯤 고향을 얼마나 보고 싶어했었을가?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땅에서 얼마나 버텨왔고 견뎌왔을가?

얼마나 고됐으면 사탕을 습관처럼 복주머니에 잊지 않고 넣어 뒀을가?


대학교 4학년때 , 나를 그렇게 아껴주던 증조할머니가 소천하셨다. 당시, 임용고시준비에 대학졸업준비에 정신없을가봐 우리가족은 나에게 비밀로 했고 졸업후에 오랜만에 집으로 가는데 할머니랑 함께 누워있었던 침대가 빈걸 보니 그때야 이세상에 없다는걸 인지하고 눈물이 왈칵 내려왔다. 

“조금만 더 살다 가시지.. 뭣하러 이리 급했대..” 


수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길에서 알사탕이 보이면 증조할머니가 생각난다. 

힘들 때 복주머니에 곱게 감싼 손수건으로 꺼내고 펼친 후 알사탕을 하나 집어서 나에게 쥐어주며 

“힘든 일 있으면 고매 참지 말고 달디단 사탕 한입 무어봐라..기분이 좀 나아진다." 라며 토닥여 주는 모습이.


.

.

.

그 모습이 지금까지도 생생해서 마음을 억누르면서  속삭인다.

“그치, 우리 할매는 많고 많은 알사탕 중에서 누룽지사탕을 참 좋아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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