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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린 Jun 09. 2023

새롭고 산 길 가는 사람들의 애통과 희망 배우기

파친코 후기- 스포 있음

김치를 만들고 팔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던 10대의 선자의 모습 출처: Apple TV


"파친코"라는 드라마 모두 한 번쯤을 접해봤을 것이다. 


- Review

나는 독서와 드라마를 모두 접해보았지만 총평은 2가지로 나뉘고 싶다. 

대중적인 관점에서는 양진, 선자, 모세,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재일교포 일가 4대의 이야기이다. 기독교인들의 관점에서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백이삭이 선자과 결혼을 하고 일본에서 목회를 하다가 신사참배 반대로 순교를 하고 극심한 일본의 차별 속에서도 선자와 그 자녀들이 노아, 모세, 솔로몬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낸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한 가족 이야기이다. 저는 이 두 관점을 조금 더 깊게 관찰하면서 느꼈던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수용하고 살아가는 모세의 인생과 그 뒷이야기 그리고  그와 반대로 부인하고 영원히 일본인으로 살고 싶었던 노아의 인생과 그 뒷이야기를 비교하는 이야기로 보고 싶다. 


- 슬프고 비통했던 우리의 역사 (人에서 族으로)

나는 지금의 “우리”가 있게 된 역사를 공부하면서 덕분에 그 당시 이주에 대해 활발하게 이루어진 19세기 후반부터 1930년대의 이주의 역사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고 다시 공부하게 되면서 느꼈던 것은 그들은 그 당시 시대배경과 산업화의 변화로 생계, 문화, 정치등 다양한 목적도 있지만 살기 위한 한줄기의 희망을 가지고 이민을 택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부분 노예취급받거나 빈민으로 살아가던 선조들의 내러티브이야기와 다시 한반도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당시 미국진영 소련진영으로 구분된 냉전의 시작 때문에 쉽게 대한민국이나 다른 나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그러다 해가 거듭될수록 조선인이 조선족으로 되면서 자아 정체성인식에 커다란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를 알게 되었고 이 또한  모든 것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개념으로 받아들였던 저의 편견조차 무의미하다는걸 느끼 진다.


-역사는 우리를 버렸지만 우리는 견뎌냈다. 

“우리 모두는 나라 잃은 망국의 백성이었다.”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늘 그렇게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고 늘 자랑스럽고 특별하게 생각했던 민족성과 정체성을 품어왔던 저로서 다소 충격적인 말이었고 용납할 수 없었던 말이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고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슬프고 가슴 아픈 말이기도 하다.

  파친코에서도 낯선 타국에서 “조센진”이라는 거북스러운 말을 들으면서도 김치를 만들고 팔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던 10대의 선자의 모습이, “우연”에 맡기는 파친코야말로 “필연”적 행복이라고는 손톱만큼도 기대할 수 없었던 그 삶을 드라마와 소설을 보면서 힘도 없고 백도 없는 사람이 헌신과 노력으로 인해 현재까지 살아온 모두의 인생을 대변해 주는 말이었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지금의 4세대인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싶었다. 마치 힘과 혁명을 벗어난 우리가 서로가 함께 연결되여 있고 이어줄수 있는 희망의 통로이자 위안의 긴 터널처럼 들렸던 위로가 아닐가 싶었다.


-우리가 필요한 “당당함”

  그렇게 걸어온 역사와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그 시대와 달리 편하게 살고 있고 우리가 견딜 수 있었고 우리가 소망을 품을 수 있었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품고 있고 해결하지 못한 응어리가 있다. 특히 저 같은 경우는 “너는 중국에서 살려면 중국어를 잘해야 돼” “중국인인데 중국말을 해야지, 왜 선족(鲜族)말을 쓰니?” “중국땅에서 잘 살려면 조선어는 몰라도 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너에게는 조선피가 있다는 걸 잊지 마” “그래도 너는 민족성은 잊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치 자신이 조센징임을 부인하고 살아가는 노아같은 사람이 있다하면 그와 반대로 자신이 조센진임을 수용하고 살아가는 모세 같은 사람들이 있듯이 저는 그 사람들과 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자리에 있는 느낌을 중국에서도 타국에서도 받았었다.  

  더 나아가서 지나간 일에 목을 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이해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고 단정 짓는 것보다 각자의 과거의 쓰라림은 각자가 다 알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들 다 공감할 수 없을 뿐이라는 제한점과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급 호텔을 지으려는 일본인들에게 집을 팔길 거부하는 한금자의 뚝심, 그런 모습이 초반에는 이해를 못 하다가 나중에는 싸인을 반대하는 솔로몬의 결정장면을 보고 저는 제 개인적, 공동체, 정체성의 “당당함”을 알게 되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미래를 바라보자”말에 화낼 수 있는 그런 당당함을 인지할 때 나는 비로소 내 정체성이 세상 앞에 당당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동산 계약전 한금자와 솔로몬의 대화 출처: Apple TV



- “디아스포라”로 읽고 “우리”라는 이름을 새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모르는 요원한 굴레 속에서치열하게 살고 있고 삶을 개척하고 있지만 한 때는 나그네로, 망국의 백성으로 불리웠지만 그 덕분에 가슴속에 묻혀왔던 선조들이 주신 뿌리 깊은 “단단함”과 “강인함”을 발견하였고 뿌리에 대한 애착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보면서 “우리”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보았던 드라마이자 저서였다.





‘자신의 조국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
어디를 가도 자신의 조국처럼 느끼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두가 다 타국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야말로 완성된 사람이다’
  (파친코 서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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