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릴 적 흔적이 묻어있는 공간
한국에서 거주한지 햇수로 4년차...
솔직히 한국에서 거주하면서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해왔었다.
"본가야 뭐.. 시간만 내면 얼마든지 갔다 올 수 있는걸"
그런데 실상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살다보니 깨닫게 되었다.
그만큼 한국에 오자마자 도저히 갈 수 있는 시간 여건이 없었고
학업 마친 후에는 갈 수 있겠지 싶었지만 더더욱 그러진 못했다.
그러다 향수병이 도졌고 시무룩하는 저를 보면서 연구소장님께서 그러셨다.
"선생님, 그 나라에 관련학회활동하던데 출장 겸 본가 방문하는게 어떠세요? 그간 한번도 안 가보셨잖아요. 가서 가족이랑 재밌게 보내다 와요." 하면서 휴가를 신청해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4년만의 밟아본 본가의 땅,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익숙했던 모국어가 어느 순간 낯설게 느껴지고 어려을 때 살았던 마을도 어색해졌다.
낯설지만 반가운 이 곳.
동네방네 뛰어놀던 곳이라서 마음 한구켠에는 본가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의 집, 14년동안 머물렀던 내방, 서재, 10년동안 12년동안 다뤘던 악기들, 내 성장기록 사진들 아직도 고대로 남아있다.
"엄마! 내방은 고대로네. 나 이제 나가면 방빼겠다고 아빠가 하도 그래서 내 방 없어진 줄 알았네.“
”우리가 딸내미 성질을 알아가지고 방을 건들수가 없어요.“
나는 지금은 그런 버릇은 없지만
예전에는 누군가가 내 물건, 내 공간에 들어오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심지어 누군가가 내 피아노를 치면 하루종일 집 떠나라 우는 그런 애였어서 부모님이 참 골치 아팠었구나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소유가 없어진다는 불안감에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내 흔적이 사라져버릴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러진 않았을가 싶었다. 하여튼 참 괴팍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런 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내가 푹 잘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는게 참으로 감사했었다.
어쩌면 본가라는 것은 많은 의미가 들어있는 것 같다.
부모님께서 만들어주신 나의 어릴적 공간..
아빠엄마가 나에 대한 애정이 담긴 공간...
나의 성장이 담긴 모노드라마같은 공간..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준 평온한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