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깡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u pire Jun 09. 2024

정신분석의 기법 : 절분

scansion 

프로이트의 사진, 위키백과 출처


자크 라깡은 국제정신분석학회(IPA)에서 제명되었습니다. 분석가들은 라깡이 교육분석가의 자격을 잃도록 전력을 다했습니다. 이 IPA는 현재도 존재하는 가장 큰 정신분석관련단체입니다. 공식적으로 라깡은 교육분석가의 자격을 잃었고, 이때 라깡파 전체가 새로운 투쟁의 장소를 만듭니다. 이 즈음부터 라깡파에 철학과 출신들이 많이 가담하게 됩니다. 라깡의 수제자이자 모든 출판물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자크 알랭 밀레도 이 시절에 합류한 제자입니다. 라깡은 스스로 이 사건을 “파문”이라고 말합니다. (세미나11)


공부를 계속하면서 생각해보면, 라깡이 파문당할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라깡은 기존의 정신분석의 틀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프로이트에 너무나도 충실한 나머지, 프로이트 이론에 조금이라도 벗어났다 싶으면 가차없는 공격을 했지요. 라깡은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자아의 방어기제에 너무 몰두한다고 하여, 그녀를 “프로이트주의의 배신자”라고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사회적 주류의 시선에서 볼 때 라깡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또한 정신분석가들이 라깡을 위험하다고 생각한데는 기법의 문제도 한 몫 했습니다. 정신분석가들은 라깡을 정말로 매우 위험한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통상 정신분석이나 심리치료는 45~50분 정도를 한 회기로 진행됩니다. 치료사는 치료에 들어가기 앞서, 내담자와 상담시간을 준수하고 이를 루틴화하는 계약을 맺습니다. 이를 치료계약, 상담계약이라고 하지요. 일주일에 정해진 요일, 정해진 시간에 50분 상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런데 라깡은 이 원칙을 무시합니다. 


라깡파 분석의 특징은, 분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도 없지만, 동시에 언제든지 끝날 수 있다고 말한다는 데 있습니다. 50분이라는 느슨한 시간이 있는데, 30분만에 끝나기도 하고, 그보다 더 길게 하기도 합니다. 사례집을 보면, 내담자가 한 마디를 꺼냈는데 분석을 종료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받지요. 이것을 “분석시간의 가변화”라고 합니다. 


정신분석가와 치료사들은 “치료시간의 가변화”가 매우 위험한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내담자에게 충실하지 않을뿐더러, 분석가가 자기 마음대로 치료시간을 재단하고서 돈까지 받았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태도라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어느정도 일 리가 있긴 합니다. 





그럼 우리는 라깡의 입장을 살펴봅시다. 왜 라깡은 치료시간을 줄이거나 늘리거나 했던 것일까요? 


치료시간의 가변화를 “분절scansion”이라고 합니다. 프로이트 - 라깡파 분석가의 대원칙은 “침묵”입니다.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 경험도 동일합니다. 분석가는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가끔 질문을 던지거나, 흠…과 같은 소리를 낼 뿐입니다. 


내담자는 당황합니다. 같이 침묵을 지키는 내담자도 있고,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가는 내담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분석가에게 애원하기도 합니다. 화를 내기도 합니다. 다양한 경우의 수가 나옵니다. 침묵은 이처럼 내담자의 다양한 감정을 분출하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라깡파 분석가는 갑자기 분석을 종료하기까지 합니다. 내담자가 어떤 특정 단어를 말하거나, 특정 제스쳐를 취하거나 했을 때, 거기서 갑자기 분석을 종료해버립니다. 분석시간을 “잘라냅니다”. 내담자의 언어의 특정 요소를 잘라서, 거기에 주목하도록 만듭니다. 그렇게 갑자기 분석시간이 종료되면, 내담자는 왜 이 지점에서 종료되었을까를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사실 이 고민의 시간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내담자에게 분석가, 치료사는 "자기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가정된 주체"입니다. 그런 절대적 권위를 가진 선생님이 갑자기 시간을 종료하거나 끊어버리면, 내담자는 매우 괴롭습니다. 라깡파는 그 괴로움을 견뎌내는 것 또한 분석수행의 일종이라고 봅니다. 


깊은 고민은 생각의 연쇄를 불러오고, 시니피앙을 순환하게끔 합니다. 그래서 무의식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앞선 글에서 무의식은 관념의 연쇄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고민의 시간, 그 괴로움의 시간, 잘라내어진 시간에 대해서 고민하다보면 관념의 연쇄가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무의식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분석가가 무의식의 발화지점에 이르러 분석시간을 종료했음을 깨닫게되고, 이는 무의식의 자각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분절, scansion, 내담자의 무의식에 맞추어 끊어내기, 잘라내기의 효과입니다. 


라깡의 기법은 이렇습니다. 내담자가 스스로 자기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분석가는 의도적으로 기법을 실천합니다. 침묵과 절분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다만 이러한 기법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저는 이 기법으로 아주 큰 효과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럴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라깡의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이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라깡이 강조한 것이 노하우입니다. 각자의 내담자에게 맞는 기법을 발명하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정신분석은 계속해서 발명되어야만 합니다. 저는 정신분석을 공부하며 실천하는 연구자로서, 라깡 뿐 아니라 정신분석의 스승들을 공부하며 내담자에게 맞는 분석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증상 조이스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