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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Mar 26. 2023

"밥 은?"

얼마나 시간이 남았을까


11시 면회. 엄마의 아침 간식이 끝나는 시간과 점심시간 사이이다. 이 시간을 선호하는 이유는 오후 시간을 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고, 혹 점심 약속이라도 생기면 편하게 갈 수도 있기도 하고, 오후엔 요양원에서 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있기도 하다. 엄마는 물론 거의 따라 하시지는 못하지만 테이블에 나와 앉아 다른 분들이 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회성의 자극이 될 수 있으니,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면회를 가면, 소리소리 지르며 대화를 시도한다. 엄마는 대부분 답이 없다. 가끔 ‘딸이야. 지은이’라는 한마디만 들어도 나는 손뼉을 치며 과장된 표현을 하고, 엄마가 잘하셨다는 것을 알려드린다. 그 상황을 인지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엄마에게 좀 더 자극을 많이 드리기 위한 노력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면회를 하다가 어느 한 주일, 면회를 못 갔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갔더니 또 딸을 못 알아보신다. 소리소리 지르며 나를 묻다 지쳤고, 나도 그냥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시선을 통해 마음이 전해 지기만을 기도하며. 그러자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엄마의 생각 속에 나의 모습은 어디까지 기억되고 있는 걸까? 20대? 아니면 30 대? 십 대까지만 기억이 된다면 그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은 너무 늙은 것 아닐까?

삼 십분 이상을 혼자 떠든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똑같은 이야기들의 반복이다. 엄마, 내가 누구인지 알아? 민석이 잘 있고, 며느리 예쁘고, 아범도 잘 있고, 그리고 엄마가 기억할 만한 이름들을 나열해 보지만 반응은 없다. 엄마의 시선을 따라 왼쪽 오른쪽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모션도 커다랗게 써본다. 그러다 지쳐, ‘엄마 올라가서 점심해 야지. 낼모레 올 게.’라고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매무새를 고치며 올라가시라고 손짓을 하자, 처다 보시며 모기소리만 하게 “밥은?” 하신다.

“올라가서 식사하시라고요. 또 올 게”

“밥은?” 다시 물으신다. 그제야 그 한마디가 내가 밥을 어디서 먹을 건지 물어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밥을 어디서 먹느냐고? 엄마 올라가시면 여기서 원장님 하고 같이 먹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올라가세요.” 

그제야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마스크 안의 입꼬리는 올라갔을 것이고 눈은 반달처럼 웃는다.

구순이 넘은, 치매를 앓는, 요양원에 계신 엄마가 육십 중반의 딸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 걱정을 하신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겠지만, 그 말을 들으며 참았던 울음이 나온다. 이제 그만 울라고 야단을 치는 원장님의 시선을 피해 도망치듯, 화장실로 들어갔다. 점심을 먹기 위해 손을 씻어야 하겠다며. 가슴 안쪽으로 흐르는 회한의 눈물도 같이 닦아본다. 손바닥에 거품이 일고 뜨거운 물에 헹구어 보지만 가슴의 한편은 먹먹하고 아리다. 이런 날들이 얼마나 더 지나야 할까? ‘편해지자’는 생각을 억지로 한 곳에 묶어 두고 되돌이표처럼 이어가 보지만, 아직도 더 많은 날들이 아플 것이고 힘들 것이고 죄스러울 것이다. 이 아리고 헛헛한 마음은 언제쯤 괜찮아질까? 언덕을 내려오며 운전대를 꽉 잡는데, 귓전에서 “밥은?” 하시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며 또 시야를 흐린다.



이 글은 엄마가 대퇴골절이 있기 전, 2월의 어느 날 써 놓았던 것이다. 서랍에 저장돼 있던 것을 꺼내 오며,

엄마에게 "밥"은, 평생 딸만 바라보고 사셨던 분의 진심 어린 안부였음을...



브런치를 통해 만나게 되는 우리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보글보글>을 만나, 참 행복했습니다. 가끔씩 이곳에 글을 올리며 같은 주제로 이렇게 결이 다른 글을 쓸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글의 순기능을 믿는 할머니가 젊은 기운을 많이 배워 갑니다. 시즌1을 종료하시면서 아쉬움도 많겠지만, 휴재기간 동안 더 따뜻한 글들이 쓰일 것 같네요. <보글보글> 작가님들께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냅니다. 모두 모두 홧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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