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침대에 누운 채로 습관처럼 네이버를 본다. 날씨가 좋아질지가 궁금하다. 오늘도 나의 솔밭 걷기를 실행할 수 있을지. 날씨에 따라 하루의 일정이 바뀐다. 백수의 좋은 점은 오늘 꼭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오후에 해가 날 것 같으면 오후에 걷고, 오전에 집 안 일들을 한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뜨면 커피를 한잔 마시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이제는 바다 옆으로 만들어진 솔밭 길을 걷는 것이 일상의 일 순위가 되었다. 그날 아침도 해무가 자욱했다. 비가 내리는 것처럼 구분이 안된 채, 셀 폰을 들고 누워 네이버를 열고 동네 소식을 클릭했다. 그중에서 한 블로그가 눈에 들어왔다. 김민섭 작가가 강릉에 책방을 열었고, 그 이름이 <당신의 강릉> 이란다. 서점의 개원일은 지난 4월 1일. 채 2달이 안되었고, 포남동 주택가 작은 골목 안이었다.
김민섭 작가는 유재석이 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여 동명이인을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던 일을 이야기 했었다. 여권의 스펠링까지 똑같은 이름의 휴학생을 찾아, 작가 대신 여행을 보내 주었다. 더하여 그 사연을 알게 된 몇몇이 기차 여행권을, 누구는 숙박비를 도와주었고, 카카오는 동명이인의 휴학생의 졸업 작품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며, 두 사람은 유명세를 탔다. 그때도 무척 궁금해서 찾아보았고, “나는 지방대 강사다.”와 “대리사회” 등의 자신의 이야기를 내놓으며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젊은 작가인걸 알았다. 책을 사 본다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강릉에 책방을 냈다고 하니, 더 미룰 수가 없었다. 월요일과 금요일이 휴무인 것을 알았고, 수요일 오후 1시경 작은 책방을 찾았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같은 책방의 매니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어 왔다. 내 책도 한 권 전하며, 한참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 주일, 다시 책방을 찾았다. 두 분의 작가가 공동으로 준비한 ‘소설가, 김동식과 만나다.’를 만나기 위해. 그날은 방문객에게 김동식 소설가의 소설집 한 권을 무료로 주신다고 했고, 물론 앞장에 자필 사인을 해 주었다. <회색인간>은 얻었고, <인생박물관>은 샀다. 그리고 두 분 작가님을 만나기 위해 미리 준비했던 나의 마음. 그 작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날 사 왔던 3권의 책 중에서 사흘 만에 2권 반을 읽었다.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보이는 책. 이렇게 열심히 사는 젊은 작가가 강릉으로 이주해 왔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6살 아들과 함께 놀았던 안목 바다 이야기와 아들이 바다를 좋아했던 이야기. 아들이 백사장에서 주운 고운 사금파리 이야기까지 책 안에 그대로 실려 있었다. 내가 늘 바라보며 매일 걷는 그 길에서 작가는 아들의 손을 잡고 행복한 꿈을 위해, 결단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릉으로 이주해 왔다.
<대리사회>, 대리 운전을 하며 만났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대리 운전을 부를 만큼 술에 취해 본 적이 없는 나의 시선에도 사는 일을 그리 녹록지 않았음이 고스란히 읽힌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누구의 대리인으로, 경계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다음에 든 책이 <훈의 시대>이다. 앞의 2권보다는 훨씬 느리게 읽혀졌다. 각 고등학교의 교훈을 비교 분석하며 이어가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유명 브랜드의 아파트 광고 카피까지 이어가며 우리들이 지배당하고 있는 언어에 대한 분석을 한다. 현재 우리들의 시선이고 평등 사회를 지향한다지만 작가의 의도처럼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단지 우리들이 쓰고 있는 언어로 갇힌 사회 속에서 스스로의 제한적 사고를 만들며 사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반성하게 하는 책이었다.
김동식 소설가의 2권 책은 이번 주에 읽으려고 아껴 두었다. 한번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하면 꼬박 밤을 새울 수도 있어, 내 몸의 컨디션이 좀 나아질 때 나의 악습관을 다시 불러오려고 한다. 아직 얼마 전에 있은 엄마의 상(喪) 이후 잠 못 이루는 밤이 많다. 누워 있으면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이것이 좀 편해질 때 읽어야 하겠다.
그리고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 또 하나 커다란 역할을 해준 것이 있었다. <당신의 강릉> 바로 옆 집인 <서와정> 이라는 곳이다. 오래된 한옥을 리모델링해 너무도 예쁘게 꾸며 놓았다. 들어가 보니, 방 2칸에 예쁜 부엌. 따로 마련된 마당이 보이는 욕실까지. 구옥의 서까래는 그냥 살리고 집안 전체는 리모델링을 최신식으로 깔끔하게 해 두었다. 그리고 대표님 남편이 손수 만들었다는 ‘개성주악’은 일품이었다. 한 개를 받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마시며 툇마루에 걸터앉아 작은 마당과 예쁜 소나무와 처마 끝에서 마당으로 이어진 긴 풍경을 바라본다. 어느 하루 이런 곳에 와 쉬었다 간다면 조용한 강릉의 작은 골목 안 주택가에서 제대로 힐링이 될 것 같다. 다듬잇돌 위에 나란히 놓여 있던 꽃고무신 한 쌍을 찍지 못하고 나왔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작가님 두 분과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책방을 나오니, 골목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차, 했다. 내 욕심만 채우려고 두 분 작가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또 다른 팬 심을 몰랐었네,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오전까지 이어질 두 분의 젊은 작가님 들과의 만남이 독자들에게는 용기가, 행사를 주관한 <당신의 강릉>과 <서와정>에는 또 다른 행복이었으면 좋겠다.
행사일의 오후부터 다음날까지 꽤 많은 비가 왔다. 김민섭 작가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고 했는데, 행사날에 비가 와서 마음이 쓰이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팬 심은 우산을 쓰고 그 작은 골목에서 자신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맞춰, 가슴속 응어리들을 덜어 내는 작은 춤사위를 출 수도 있고. 박자에 맞춰 콧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또 같이 온 친구가 있다면 수다를 떨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골목의 입구, 전봇대 밑 아스팔트 위에 백묵으로 커다랗게 그려져 있던 물고기가 떠내려 가지 않기만은 바래 본다. 쉬운 길 찾기를 위한 세심한 배려에 슬며시 웃음을 지으면 골목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걸어갔었는데...
책방 이웃의 꽃들은 비를 맞으며 환한 미소를 지을 수도 있으니까.
고향 강릉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작가 김민섭의 팬심으로 감히 바란다면, 이런 젊은 작가가 이곳에서 오래 머물면서 글의 선기능을 잘 알렸으면 좋겠다. <당신의 강릉>과 <서와정>두 곳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민섭 작가의 책 제목처럼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며 다가선다.
몇 번 더 이곳을 방문할 것 같다. 이 작은 행복이, 이 따듯함이 골목 안의 바람을 타고 전해진다. 그땐 햇살 가득하고 꽃들은 활짝 펴 더 반갑게 만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