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연주가 있는데 같이 갈래?"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에 우리 옛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흔쾌히 간다고 했고, 남편도 좋아했다. 연휴 가운데에 낀 어느 오후여서 관람객이 그리 많지 않아 조용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선교장은 강릉이 자랑하는 문화유산 중의 하나이다. 1967년 중요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고, 강릉지방 명문인 이내번(李乃蕃)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하여 대대로 후손들이 거처하는 300년쯤 된 고택이다.
그중 활래정(活來亭)은 대문 밖인 선교장 입구에 있는 큰 연못 옆에 세워진 정자로, 연못 속에 돌기둥을 세워 주위에 난간을 돌려지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의 건축물이다. 2칸은 온돌방이 마루와 합쳐져 ㄱ자모 양이고 옆에는 차 끓이는 다실이 있어 근세 한국 특유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고 문헌은 전하고 있다.
강릉하면 보통 여행객들은 경포대와 오만 원권과 오천 원 권에 나온 오죽헌 정도만 떠올리겠지만 사실 강릉은 많은 문화 유적지를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선교장이고 또 가까운 곳에는 허난설헌 생가와 김시습의 생가의 기념관도 있다. 모두 깨끗하고 과하지 않게 잘 가꾸어져 강릉 지역을 찾는 여행객들을 반긴다.
자주 한국을 오가면서 시간이 될 때마다 들려 보는 고택들과 문화유산은 한국의 정서를 잊지 않고 살게 해 주고, 그리움이 짙어지는 시간이면 조금씩 들추어 보며 시린 가슴을 달래기도 한다. 해외에 나가 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에 동감하며 늘 강릉을 사랑하며 살고 있다.
그런 고택에서 옛 소리를 만날 기회는 그리 흔치 않을 것 같았다. 예정된 시간. 활래정 처마와 이어지는 곳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프로그램을 펼치니 <300년 고택, 이야기 꽃 피는 종가>라는 프로그램을 나누어 준다. 소제목은 ‘고택-풍류를 즐기다’였다. 누정시 와 명상 콘서트.
누정시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보는 단어였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시인 박용재의 설명이 없었더라면 누정시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을 듯하다. 누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나, 누각에 관한 시를 지어 올리는 일을 누정시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활래정에도 꽤 여러 개의 누정시가 누각과 처마 안쪽의 높은 곳에 걸려 있었다. 단소 연주와 거문고 연주, 단소 장구 거문고의 합주 등이 이어졌고 처음 보는 국악기인 ‘앙금’이라는 악기와 단소, 장구의 합주도 연주되었다. 영산 회산 중 하현 도드리. 수룡음, 신쾌동류 거문 산조 중 중중모리 자진모리 등으로 이어진 연주.
연주 사이사이에 작품의 설명과 누정시와 강릉의 아름다운 풍광도 설명해 준 시인 박용재. 중간에 시인의 대표 시 ‘사랑은 사랑한 만큼 산다’의 낭송도 좋았다. 시인은 강릉을 신의 도시라 말했다. 대관령에서 보면 아름다운 달이 떠 있는 대부도의 모습으로 강릉은 자리하고, 이 아름다운 곳에서 향기 그윽한 차 한잔하며 누정시를 읊으면 풍류를 사랑하던 옛 선비들은 세속을 잊고 지내지 않았을까. 프로그램과 함께 건네받은 선교장 활래정 누정시 몇 편은 시대의 풍류객들의 시문들이 여러 편 있었다. 당대에 내로라하는 문인들과 묵객들이 선교장을 방문하여 시, 서, 화를 남겼다고 한다.
거문고 소리 들으며 푸른 대 숲에 앉아 연못에 드리운 버드나무와 만개한 연꽃을 바라보며 세월을 함께 했을 풍류객이 되어 술잔에 비친 달을 바라보았을 당대의 문장가가 되어 본다. 그 마음은 시인 박용재의 시 한수로 이어진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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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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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이 인생이다.
거문고의 농현에, 앙금의 울림에, 피리의 간드러진 음색에, 장구의 추임새가 어우러졌던 저녁. 그만큼의 인생이 활래정 연꽃잎들 사이로 퍼진다. 옛 향기 그윽한 어느 오후의 강릉. 오래오래 간직하며 남은 인생 천천히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