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를 보고 싶다던 친구가 찾아왔다. 겨울의 끝자락, 봄은 저만치 오고 있고, 친구는 봄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박수를 보내며, 반가이 손을 잡았다. 인연은 브런치를 통해서였다.
내게는 너무 낯선 곳, 브런치. 앱을 깔고, 작가신청을 하고, 일주일에 한 두 개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출판사의 권유대로, 컴맹인 채.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던 시간이었기에 마음은 급했고,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다른 작가들의 글들은 뭐든 읽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같은 이야기라도 통통 튀게 풀어 가는 사람. 말하는 것처럼 편하게 풀어가는 사람. 사실에 기반한 르포. 유려한 언어로 글을 만들어 가는 이들. 짧지만 임팩트가 충분한 글들. 곱고 아름다운 언어와 사회 문제를 파 헤치는 글들까지 그 종류도 기법도 다양했다. 살면서 이렇게 다른 스타일의 글들을 한꺼번에 모아 놓은 플랫폼을 본 적이 없었다. 신기하기도 했고 재미도 있어서 밤낮으로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만난 한 이야기. <사주팔자를 믿으시나요?>였다. 작가 스스로가 천주교 인이라고 밝히며 쓴 이야기는 어느 방송국에서 시리즈로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 작가가 참여했던 부분과 결론을 읽으며, 이야기를 너무나 재미있게 풀어 가는 것을 보고 독자신청을 했고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연락처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지난번 방문 때 부부가 함께 만났다. 가벼운 점심 식사 후, 집에서 커피 한잔하고 헤어졌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와준 작가 부부가 고마웠고 이렇게 사람의 인연은 만들어지는구나 싶었다. 이번에도 물론 연락을 했고 겨울 바다를 보러 오기 전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떠난 빈 둥지에서(물론 크림이 와 쿠키라는 반려견과 반려묘가 있기는 하지만) 시작하는 도전을 알게 되었고 힘찬 박수를 보내줬다. 새 학기를 시작하기 전, 밤새 수다를 약속하며 기다렸던 그 시간. 겨울 바다의 푸르름과 솔향기 가득한 솔밭 길도 좋지만 더 보여줄 거리가 없을까 고심했다. 그러다 찾은 곳이 <<아르떼 뮤지엄, Arte Museum Valley>>. 제주와 여수에 이어 2021년 12월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곳을 가보기로 한 것은 추운 날씨와, 경포 호수 근처이고 또한 ‘몰입형 미디어 아트’ 상설 전시관이기 때문이었다. 몰입형 아트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 의미가 궁금했고, 무엇을 보여줄지도 궁금했다.
날씨가 포근했더라면 바닷가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보트를 탔거나 솔밭과 경포 호수를 걸었겠지만…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를 해 두었던 덕택에 긴 줄을 서지 않고 키오스크에서 티켓을 뽑아 입장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는 안이 어둡고 거울이 많으니 조심하십시오,라는 주의를 주었다. 둘러보니 입장객들 중에 내 나이가 가장 많아 보였다. 아마 그래서 더 한번 주의를 주었나 보다. 젊은이들과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입장한다.
처음 들어간 공간은 고운 색의 작은 꽃들이 물결치듯 다가온다. 코스모스의 향연. 꽃 향기가 그윽하게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꽃 숲 안에서 나도 꽃이 된 것처럼 흔들린다.
강릉 아르떼 뮤지엄을 홈페이지에서는 “관동팔경의 으뜸인 강릉에서는 밸리(Valley)라는 테마로 백두대간의 중추인 강원도와 강릉의 특성을 반영한 12개의 다채로운 미디어 아트 전시가 1500평의 공간에서 펼쳐집니다. 영원한 자연(Eternal nature)을 주제로 제작된 작품들은 시각적 강렬함과 감각적인 사운드, 품격 있는 향기와 함께 완벽한 몰입 경험을 제공합니다.”라고 돼 있었다. 아~ 그래서 꽃향기도 났었구나 싶었다. 굉장히 넓어 보이는 공간들은 거울을 이용한 반사 효과였고. 빨려 들어갈 듯한 동굴들도 아마 각도가 다른 거울들의 효과였으리라.
색을 달리 하는 등들이 하늘에 떠 있는 듯한 공간에서는 나도 그 등을 잡으러 발뒤꿈치를 들고, 손을 올리고, 등의 빛에 반사되는 얼굴에 취해 보기도 했다. 빗소리에 맞추어 등은 내려오고 곧이어 나타나는 무지개. 아마 등들은 빗방울이었나 보다.
거센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에선 겁 없이 성큼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보기도 하고, 번개 불이 번쩍이는 공간에선 벼락도 맞아본다. 벼락을 맞아도 살아 있던 우리들은 걸음을 옮겨 관동 팔경의 모습을 감상했다. 이층으로 올라갔다. 내려 다 보이는 바다는 커다란 파도로 관객들을 집어삼키고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금방이라도 폭풍을 몰고 올듯하다. 내려오면 넓은 공간에선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는 관객들이 여유롭다. 모네부터 고흐까지, 명화 감상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던 사전 설명이 있었지만 우리 둘은 그곳에서 두 어 시간을 지냈고 새롭고 신선한 경험 속에서 걸음을 옮겼다. 인연이 의지가 되는, 좋은 관계로 이어졌던 시간.
우리는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찻집에 앉았다. 찻잔에 내려앉는 초생 달. 찻잔에서 피어 나는 꽃망울. 제한 시간 15분이 되자, 테이블에는 Thank you,라는 단어가 뜬다. 아마 그 단어가 뜨지 않으면 그 찻집은 많은 관객들이 모여 자리를 뜨지 않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감상하며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자리를 옮겨 출구와 연결되어 있는 기념품 판매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 칠 수 없듯, 3D 엽서 한 장과 꽃 그림, 바다, 명화 등의 엽서 몇 장을 골랐다. 선물로 받은 엽서를 들고 집으로 들어와 차 한잔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종일 이야기를 했는데 뭐 그리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았는지…
돌아가는 길, 어둠이 내려앉았고, 밤을 새우려고 했던 계획은 그녀의 사정으로 무산되었지만 종일 웃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렇게 다음을 약속하며 헤어지고.’
검은 바다 위로 하루를 보내며, 생각한다. 내가 강릉을 사랑하는 이유의 또 하나가 더해졌다. 그 푸른 동해 바다와 늘 잔 물결 이는 경포호수와 솔 향 가득한 솔밭과 커피 향 그윽한 안목, 오죽헌과 선교장, 대관령 옛길과 솔 향 수목원 말고도 또 하나의 볼거리. 우리들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한 이곳을 또 다른 친구들과 같이 와도 좋겠다. 계절마다 미디어 영상도 바뀐다고 하니, 봄과 함께 올 또 다른 친구들에게 이 화려하고 신비한 봄을 선물하고 싶다.
브런치가 만들어 준 인연을 잘 이어가며 사는 이야기 두런두런 나누고 싶은 밤이다.
그녀가 돌아가고 환한 봄도 왔다가 봄비에 사라졌다. 꽃비 날리는 경포 호수 둘레길을 걸으며 만남과 헤어짐을 생각한다. 아무리 잡고 싶어도 앞으로만 가는 세월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며 이 찬란한 올 해의 봄을 보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