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나와 길을 건너면 바로 송정 해변 솔밭이다. 한 30여분 경포 쪽으로 솔밭 길을 걷다보면 경포호수를 만날 수 있다. 경포 호수의 둘레는 4.7킬로미터 정도로 한바퀴 돌려면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 반 남짓 걸린다. 강릉의 모든 곳을 사랑하지만 특별히 이곳을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그곳에 아버지의 시비(詩碑)가 있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이자 시인 최인희(崔仁熙)는 1926년에 태어나 1958년 작고하셨다. 지금은 나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분을 바라볼 수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세 살이어서 내 기억 속 모습은 없다. 어머니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 몇 장 남의 흑백 사진. 그리고 남겨진 원고에서만 존재했다.
아버지의 부재는 늘 ‘의문’ 이었다. 또래의 아이들과는 달리 ‘왜 나만?’ 아버지가 없는지 궁금했었다. 환하게 웃으시며 대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철이 들며, 아버지는 “구름나라의 시인”이 되신 걸 알았고, 글짓기를 하며 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러나 나는 시인이 될 자질은 없는 것 같다. 시인은 어떤 장면을 만나면 반짝이는 시상이 떠 올라야 하는데 난 그런 재주가 없다. 대신 그 시간이 지난 후, 그런 모습들을 본 것처럼 서술하는 재주는 조금 갖고 있는 것 같다. 시인의 딸이여서,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일찍 포기했고 요즈음은 길게 쓰는 글들을 더 선호한다.
사실, 어머니는 나의 글쓰기를 썩 좋아 하시지는 않았다. 전문직 여성의 목소리를 좀 낼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결혼 후 유학 가는 남편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대학을 다녔다. 돌이켜보면 영어만 쓰며 열심히 살았던 10여년의 세월이 있었기에, 다른 길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을 수도 있고, 인생의 숙제를 언젠가는 해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것도 애써 잡고 있었다. 다행이 기회는 주어졌다.
그리고 이제, 그 본업에서는 은퇴를 했고 지난 세월들을 돌아보며 글을 쓴다. 남아 있는 시간이 훨씬 짧은 이 시간쯤에서 돌아다 보는 일은 대부분 좋은 기억들이다. 그 시간 아팠다고 해도, 그 아픔들은 모두 지나간 과거가 되었다. 지나 갔기에 웃을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음을 잘 아는 나이가 어느덧 되었다.
경포 호수 주위의 조각 작품들과 시비는 <경포호 조각로드>라는 이름으로 1999년 조성되었다. 경포호 둘레길 일부에 조성된 조각 품들과 강릉과 인연이 있는 작고 한 시인들의 시비들. 그곳에 있는 시인 최인희의 시비. 강릉에 오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고 미국으로 돌아 가기 전 맨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기도 하다.
강릉에 왔을 땐, ‘또 왔다’ 는 문안 인사. 미국으로 돌아 갈때는 ‘다녀 오겠습니다’ 하는 마음 속의 인사를 건넨다. 아버지가 누워 계신 북평의 선산은 산세가 험해 잘 갈 수가 없는데 이곳은 언제라도 올 수 있는 곳이여서 참 좋다. 이곳에서 아버지를 뵙고, 아버지의 시심을 배우려고 애쓰기도 한다. 늘 경포호를 바라보시고 계신 아버지의 자리. 경포호 둘레길을 걷는 이름모를 여행객을, 길손들을 반기시며 함께 하신다.
계절이 바뀌는 시간에는 계절의 두런거림을 만나고 풍경이 바뀌는 정겨운 모습을 즐기시겠지. 딸과 사위와 다른 가족들의 방문도 아실것이다. 가끔 찾는 길엔 주위의 풀도 뽑고 세월이 베인 글자들을 장갑낀 손으로 딱기도 한다.
“조용히 이슬이 지는 호숫가에는 하이얀 물줄을 그으며
한쌍의 백조도 떠나가리라”
시 한수 읊으시는 분.
언제라도 찾아오면 늘 그 자리에 계시는 분. 오늘도 감사하게 이 자리에 서서 그분의 마음 한 자락 배우며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