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 솔밭길만 걷다 친구 따라 대관령 옛길로 나섰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식단 조절을 해도, 체중 조절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과체중이었던 작년 여름 이후, 무릎이 약간 불편하고 행동도 예전처럼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매일 최소한 만보를 걷고, 스트레칭도 하고, 훌라후프도 돌린다. 처음 3개월쯤 지나자, 체중은 좀 감량이 되었고 뱃살도 좀 들어갔다. 움직임도 많이 가벼워졌다.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싶어, 하루도 빠짐없이 걷는다. 친구와 서로 경쟁하듯 걷고. 매일 만나 수다도 떨 수 있으니 일석이조이다.
미국에서 가게와 집이 걸어서 40분 거리에 있다. 저녁을 먹고 남편과 같이 걸어간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걷는다. 그러나 걷는 일은 몸에 탄성이 생겨서 그런지, 체중이 좀 빠지고 나자. 어느 숫자에서 딱 멈추어, 더 이상 진전이 없다. 어느 날은 더 심한 운동을 좀 한 것 같기도 하고 식사량도 조절을 하는 것 같은데, 더 이상 체중감량이 안된다. 마의 숫자에 딱 걸려있다.
그런 하소연을 지인에게 했더니, 그 마의 숫자에서 실망하지 말고 한달만 계속해 보라고 했다. 그러면 어느 날 그 체중이 쑥 내려갈 거라고. 그 한달이 이미 지났는데도 숫자에 변함이 없다. 마음은 안달복달. ‘이 체중이 왜 이렇게 안 내려가는 거야’하며. 더 이상 음식을 줄이면 안될 것 같고, 운동량을 더 늘리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체육관이라도 등록을 해야 할까 싶었다. 그러나 이 나이에 몸짱을 만들어 뭘 할 것도 아니고 건강을 유지하고 체중이 불어서 오는 불편감을 해소하기만 되면 되는데. 그러자 마침 친구가 ‘좀 세게 해볼까? 늘 걷는 솔밭 말고 등산도 가끔 하자고 했다. 등산을 하려면 등산화도 있어야 하고 작은 배낭에 간식이나 물도 넣어가야 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 스틱도 하나 있어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꽤 있을 것 같았다.
친구는 일단 가벼운 언덕 같은 산행부터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둘이 가는 것 보다는 길을 잘 아는 친구의 남편과 같이 가며 등산 코치도 좀 받자고 했다. 좋다고 대답을 했고, 봄처럼 따스한 지난 주, 셋이서 대관령 옛길을 찾았다. 그전에도 두어 번 가본 길이었지만 그때는 단풍 구경이 주였고, 이번엔 겨울 등산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시험해 보는 산행이었다.
얇은 옷을 껴입고 작은 물병을 하나 들고 길을 나섰다. 대관령 옛길의 입구에 차를 세우고(내가 한국에서 보았던 주차장 중에 가장 넓었고, 한가했다.) 완만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눈이 오지 않은 겨울 산은 푹신한 흙으로 걸음을 편하게 해주었고 길에서 만나는 징검다리와 계단, 낙엽을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산을 지키고 있었다.
해변가의 솔밭과는 또 다른 소나무 숲은 솔 향을 은은하게 뿜으며 우리를 반긴다. 40여분 올라갔을까, 땀도 나고 제법 숨도 찼다. 물을 마시며 잠시 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계곡에서는 얼음물 흐르는 소리가 정겹다. 소나무들은 곧게 뻗어 그 늘씬함을 자랑한다. 작은 비탈길이 이어지는 곳엔 밧줄을 매고 이어 놓아 등산객의 안전에도 신경을 쓴 정돈된 등산로. 보기 쉽게 알려주는 이정표. 이 정도면 가끔 와도 될 것 같다고, 친구와 이야기했다. 친구 남편도 기꺼이 가이드가 되어 주신다 한다. 대관령 옛길에는 많은 등산로가 있고 어디로 가도 길은 통한다며.
첫 산행이라 무리하지 말자면서 이정도면 맛보기로 충분 하다고 한다. 친구 남편의 가이드가 있었기에 우리 둘은 더 편하게 올랐고, 더 편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친구 남편은 운동을 잘 하는 분이라서, 친구와 나의 느린 걸음이 답답할 수도 있었지만 내색하나 하지 않아서 산행을 하는 내내 든든했다.
내려오는 길에 잘 지어진 산장 같은 곳을 만났다. 말처럼 이곳에 머물며 가까운 곳에서 산행을 하면 자연치유가 될 것 같은 곳이었다. 겨울이라 운영은 안 하는 듯했고, 관리인만 있는 것 같았다. 따뜻한 봄이 되면 친구와 같이 그곳에서 하룻밤 자며, 사는 이야기 이어가도 좋을 것 같았다. 산의 기를 받고, 가벼운 산행을 하며, 자연 속에서 호흡하면 살면서 아팠던 모든 것들이 치유될 듯한 곳, 치유의 숲. 그 시간을 기약하며 산을 내려왔다.
운동을 했으니 이른 저녁을 먹자고 해서 쌀국수 집으로 향했다. 친구 부부가 미국에 왔을 때 갔던 쌀국수집, 그 맛을 상기하며, 미국의 좋은 추억으로 잠시 돌아갔었다. 식당은 조용했고, 미국에서 먹었던 쌀국수 보다는 맛이 조금 떨어졌지만, 운동후에 먹는 국수 맛은 나름 괜찮았다.
겨울 산행을 하자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좀 있다. 스틱도 하나 있어야 하고, 등산화도 눈에 미끄러지지 않는 안전한 것이 있어야 하겠고, 장갑도 좀더 따뜻한 것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다음을 약속하고 집에 돌아와, 바로 등산화를 주문했다. 찾아보니 장갑은 더 따뜻한 것이 있었고, 모자는 현재의 털모자면 충분 할 것 같았다. 친구에게 스틱이 두개 있다며 한 개를 빌려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렇게 완벽한 겨울 산행준비가 되었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산에 가고, 나머지는 바닷가 솔밭을 걷고. 그러다 보면 이 마의 몸무게가 휙 내려가며 성취감을 안겨줄지. 그날을 위해 오늘도 나는 꽁꽁 싸매고 만보를 채웠다. 빰으로 불어 드는 겨울 바람은 싸늘하지만 등과 모자 밑에서는 땀이 흐른다. 걷는 동안은 모든 상념이 다 날아가버리고 깊은 호흡 속에서 아주 단순한 내가 된다. 그러다 어느 겨울날 산행에서 꽃눈이 만개한 산수화 같은 풍경을 만날 수도 있고 상고대가 활짝 웃으며 우릴 반겨줄지도 모를 일이다. 온전히 자연과 함께하는 나를 위해 오늘도 또, 내일도 걷고 또 걸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