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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Nov 09. 2023

만두를 빚으며

정성을 다하여


성당의 연례행사 중 하나였던 만두 빚기. 코로나로 지난 3년 동안 못하다 올해 다시 하게 되었다. 수익은 주로 신자들 중 어려운 분들을 도와 드리는 것으로 사용했는데, 올해는 성당 지붕을 교체하는 데 쓰인다. 30년 넘은 건물 지붕은 곳곳에서 물이 샌다. 보수 공사를 해마다 해도 임시방편일 뿐, 새로 교체한 천장 타일에도 얼룩이 생겨 난감했다. 이번 사목위원회는 지붕을 완전히 다시 덮기로 결정을 한 모양이다. 몇 주 전 주일에 긴 설명이 있었고 거금이 들 프로젝트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첫 번째 시작한 것이 만두 빚기. 주일 미사 후부터 시작되었다.


미리 주문한 만두소 재료가 도착해 있었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재료를 씻고 다듬는 일부터 했다. 이런 행사가 있을 때면 난 집에서 방수 앞치마를 가지고 간다. 이름까지 써서. 그래야 성당 부엌용 앞치마를 다른 분들이 입을 수 있으니까.  뿐만 아니라 칼도 들고 간다. 내 칼이어야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일의 효율성을 생각하고 내 것이 편하니까… 깨끗이 씻은 양배추와 당근, 양파와 당면 자르기. 분쇄기가 있다고 해도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준비해야 분쇄기에 넣었을 때 잘게 잘린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냉동되지 않은 것을 토요일에 도착하게 주문했다.


미사 후, 모두 팔을 걷어 부치고 일을 시작한다. 큰 그릇들을 다시 한번 닦아 두고, 야채를 분쇄기에 들어가기 좋은 크기로 썬다. 또 당면을 삶을 물을 준비하고, 또 신자들의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말하지 않아도 척척 손발이 맞는 것은 지난 몇십 년의 노하우가 우리들의 몸에 있기 때문이다. 성당만두는 동네에 소문이 나, 미리 주문을 하고 사러 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올해는 주문을 받은 양만 500박스. 한 박스에 20개씩 들었으니 최소한 만 개의 만두를 빚어야 한다.


일요일 오후부터 시작하여 수요일 저녁까지 이어지는 프로젝트. 미리 주문을 받을 때도 찾아갈 날짜와 시간을 정해 혼잡을 피했고, 적당량으로 나누어 한 날에 몰리는 쏠림현상을 베제 했다. 양배추는 분쇄기에 갈며 소금을 뿌리고, 당면은 뜨거운 물에 한번 데쳐 두 번 분쇄기에 돌린다. 당근도 잘게 분쇄기에 잘라 짤순이로 물기를 뺀다. 양파는 맨 끝에 분쇄기에 넣는데, 그 매운맛에 단체로 눈물이 흘렀다. ‘자매님들 맨 얼굴이 나오겠네’ 하는 누군가의 멘트에 눈물을 줄줄 흘리다 한바탕 웃었다.

재료 준비가 어느 정도 되자 두 가지 고기를 꺼내 소금을 넣고 섞는다. 이때 첨가하는 소주 몇 병은 고기 냄새를 잡아주는 좋은 방법이다. 짤게 가른 양배추를 끓는 물에 한번 데치고 실외에 내놓아 식힌 다음 망에 넣고 짤순이로 짠다.

이제 모든 재료를 섞을 때 제일 필요한 것은 형제님들의 건장한 어깨와 고른 힘. 재료를 골고루 잘 섞어 주는 것이 관건이다. 커다란 고무통에서 섞는 양이 어마어마하다. 잘 혼합된 만두소는 통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한다. 올해는 28통. 모든 냉장고가 총동원됐다. 주일인 첫날은 준비로 날이 저물었고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부터는 만두를 빚으면 되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공기가 무척 차다. 주말에 첫눈이 왔고 산엔 눈이 하얗게 쌓였다. 눈바람을 맞으며 성당으로 향한다. 도착하여 커피를 올리고 뜨거운 물을 준비하고 히터를 올린다. 하나둘씩 만두를 빚으러 오는 자매님들의 걸음이 모이고, 모닝커피 한잔으로 시작하는 만두 빚기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종일 꼬박 앉아서 빚는 만두. 구순의 어르신부터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온 젊은 자매님까지 한마음이 되어 만두를 빚는다. 어느 자매의 좋은 입담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만두 빚는 것을 돕기 위해 오랜만에 성당을 찾은 분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7080 노래가 나오면 흥얼거리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마스크를 쓰고 조용히 빚는 일에만 집중하기도 한다.


꼬박 사흘이 걸려 만두 빚기가 끝났다. 예상보다 많은 만두가 빚어져 추가로 판매가 가능했다. 우리가 준비하고, 우리가 빚고, 우리가 사가는, 우리들의 행사. 지난 3년 쉬었던 탓일까 나이 탓일까 힘이 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해야 하는 내 일이라는 생각은 그때도 지금도 똑같다.

새 지붕을 올리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사업들을 해야 한단다. 그 사업이 무엇이 되었든 그 또한 우리들의 일이다.  지난 4년 한국을 오가느라 소원했던 일, 코로나 때문에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한발 앞으로 나간다. 평신도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대단할까 만은 ‘나의 일’이라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나의 걸음을 있는 그대로 봐주신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

목요일 아침엔 손가락도 아프고 어깨도 아팠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다. 아직 쓸만한 몸과 시간을 허락하신 분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이민자라는 시린 마음 때문일까 더불어 사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사는 일, 참 고맙고 든든하다. 하느님 나라에 쌓아질 이 작은 수고, 첫눈을 맞는 반가움으로 그곳에 살포시 놓아둔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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