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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Mar 24. 2024

고도를 기다리며

다시 강릉 11


햇살이 포근한 봄날 주말, 절친과 나는 또 공연을 보러 갔다. 역시 강릉 아트센터. 그 유명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전국 순회공연이 전석 매진. 나이를 무색게 하는 신구(고고), 박근형(디디). 박정자(럭키) 대배우와 그들의 연결선이 되는 김학철(포조) 배우와 김리안(양치기 소년). 5명의 배우가 채워가는 무대. 무대 장식이 거의 없고 배경음악도 없고 조명조차도 단순하다.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사무엘 베게트가 1940년대에 프랑스어로 쓴 작품. 이 작품은 1953년 파리의 바빌론 극장에서 프랑스어로 초연되었다. 대성공을 이룬 연극은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고 우리나라에서도 1969년 이후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그 후 50년간 약 1500회 이상, 22만여 명의 관객들을 동원한 대작이다. (나무 위키에서).  특히 이번 순회공연은 서울, 국립극장을 시작으로 전국 순회공연을 한다. 대배우들의 이름 때문이었을까, 작품의 우수성 때문이었을까? 전국투어 전석 매진이라는 기염을 토하며 강릉에서도 공연을 볼 수 있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 그 옛날, 책을 읽었을 때는 그 난해성에 고개를 저었다. 꼭 읽어야 하는 고전의 목록이었기에 읽었던 책. 그땐 주제가 너무나 어려웠다. 그때 나는 고도는 막연히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이라는 명제를 두고 열심히 살다 보면 그 끝에서 고도를 만날 수 있다는. 고도는 성공 같기도 했다. 주인공들의 대화는 맥락이 잘 이어지지 않아 혼란스러웠지만 그래야만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책이 되는 건가 싶어, 참고 읽었었다. 책을 덮으면서, 뭐 지? 했던 한마디 감상은 오랫동안 의문인 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 나이가 든 후에 본 연극. 작품을 대하는 태도도 느낌도 많이 달랐다. 현재의 내 시선에서 고도는 무한한 기다림으로 그 기다림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는 생각. 양치기 소년이 ‘고도는 내일 온다’고 전했지만 주인공인 고도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의 모호하며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 대화. 그 안에서 양념처럼 가끔 나오는 해학적인 한마디의 말들. 시간을 잊어버려 어제과 옛날을 구분하지 못하는 고고. 대화의 중간에 감초처럼 나오는 디디의 불편한 모습인 배뇨 장애. 고고와 디디 사이에 나타나는 또 한 사람, 포조. 웅변 같은 그의 말. 포조의 짐꾼인 럭키의 구부러진 목과 절룩거리는 걸음. 길들여진 럭키는 생각조차도 누구의 명령이 있어야만 할 수 있고. 그 생각은 긴 독백으로 풀어진다.


어쩌면 럭키의 긴 독백은, 고고의 건망증과 발에 맞지 않은 신발을 신은 모습은, 그 어느 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행복을 기다리는 디디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면 너무 과장된 시선일까? 1막이 끝나고 신발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장막이 처진 무대엔 밝은 빛이 비친다. 신발을 보면서 나의 신발은 내 발에 잘 맞을까? 고고처럼 너무 작아서 불편하거나 디디처럼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힘든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의 끝에는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고도가 오면 행복할 거야 하고 말하는 디디처럼. 아니면 고도는 신일까? 죽음이라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만 만날 수 있는 행복 같은 것… 고도는 많은 질문을 던져 준 채 1시간 50분의 막을 내렸다.


옆자리의 절친에게 낮은 소리로 말한다. ‘고도가 시사하는 바가 크네’. ‘그러게.’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공연장을 빠져나간다. 나의 고도를 찾아서…그 무게가 너무 무겁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을 갖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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