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짐을 챙긴다. 체크 아웃을 끝내고 캐리어는 버스의 짐 칸에 싣고 길을 떠난다. 일본을 떠나기 전 꼭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 외국인 관광객만 들어갈 수 있다는 면세점. 쇼핑하고는 관계가 먼 우리지만 여행 일정이니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갔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의 설명이 장황하다. 꼭 사야 될 물건들을 알려준다. 조금은 약장사 같다는 느낌. 면세점에 도착했고 우리 일행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 남짓,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들은 아저씨들이 와이프에게 줄 화장품을 고르고 우리 남편들은 몸에 좋다는 약을 몇 개 고른다. 쇼핑을 안 하겠다던 우리들의 마음은 가이드의 설명과 면세점 판매원들의 입담에 넘어갔다. 모두들 면세 봉투 하나씩을 손에 들고 버스에 오른다.
이어 도착한 곳은 도쿄에서 가장 오래 됐다는 사찰, 아사쿠사 절(Temple Asakusa).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자비의 여신 관음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사찰의 입구는 긴 상점들이 이어진 ‘나카미세도오리(Nakamisedori)’라는 일본 전통 상점의 거리. 기모노를 입은 여행객들도 눈에 많이 보인다. 여기도 한국의 북촌 마을처럼 기모노 체험 가게가 즐비하다. 차이나 타운 못지않게 관광객이 많다. 일본 과자를 시식하는 곳에서 몇 개 먹어 봤지만 똑같은 부채 과자 맛이다. 한국에도 많으니 구매는 패스. 색색의 기모노를 차려입은 관광객들 사이를 지나며 절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경당 내에도 기모노를 차려입은 관광객들이 많다. 이곳도 신사와 같이 있다. 인파를 따라 떠밀리 듯 걷다 경당을 빠져나오며 더위를 식히기 위해 아이스크림 하나 사서 먹는다. 그 달짝지근에 목만 더 마른다. 병 물을 사서 마시며 버스로 돌아온다.
그 앞에서 만났던 조형물. 황금 똥 같이 생겼다. 아사히 맥주 거품을 형상화했다는데, 맥주 맛이 싹 사라질 것 같다.
일본을 떠나기 전 마지막 가는 곳은 메이지 신궁(Meji Shrine). 일본 근대화에 최고의 영향을 끼친 메이지 일왕과 소헌 황태후의 영혼을 봉안한 곳이다. 1920년 건설되었고 입구에는 초대형 목조 토리이, 일왕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일본의 전통적인 신도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본전이 있다. 신궁은 70만 평방미터의 숲으로 이루어져 있고 신사를 세우기 위해 전국에서 기증된 300 여종 12만 개 상록림이 울창한 숲을 이룬다. 메이지 기념 미술관,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기념관, 다양한 운동 시설이 있다. 그 규모에 압도되었지만 역사 안에서 불편하게 만나야 되는 곳이어서 시선도 걸음도 조심스러웠다. 마침 그때 전통복장을 한 한 무리의 남자들이 토리이를 빠져나와 미술기념관 쪽으로 걸어갔다. 무슨 의식인지는 알 수는 없었고 누구에게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좋은 구경거리로만 두었다.
신궁의 입구에는 일본 전통주들의 통이 커다란 벽을 이루며 여행객을 반기거나, 잘 다녀 가라는 인사를 한다. 많은 주류회사에서 술이 잘 익기를 기원하며 바쳤다는 술통. 비바람을 맞고 섰는 역사가 100년을 넘고 있단다. 일본의 사케 역사가 고스란히 옮겨져 온 것 같다. 혹시 우리가 마셨던 사케도 찾아보고, 그 상호를 발견하고 내심 반가웠다.
토리이, 에마, 신사, 사케… 찬란한 봄 풍경 속에서 만났던 새로운 단어들. 질서와 청결과 검소가 고스란히 베어 났던 일본인들. 그들의 친절하고 우아한 미소 안에 감추어진 무엇이 있다 할지라도 짧은 시간 여러 곳을 돌며, 낯선 여행객이 느낀 감정은 단 하나 “참 배울 것이 많은 나라인 것 같다”는. 처음 만나는 곳이었기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면, 이 좋은 감정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동행했던 절친부부가 있었기에 더 좋은 여행이었고 감정 또한 더 좋았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음 여행을 기다리는 성급한 마음이 된 적은 없다. 단풍색이 고울 가을에, 흰 눈 덮인 설국에, 다시 가보고 싶다. 종일 온천탕에 몸을 담그며 인생의 피로를 풀고 싶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볼까? 일본어를 배워 여행을 좀 편하게 해 볼까? 생각은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히 떠, 은하수가 되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