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발하자, 브롱코스!
처서가 지나자 선선한 바람이 불며 계절은 어김없이 더위를 밀어낸다. 계절의 끝으로 찾아오는 흥겨움은 풋볼 시즌과 함께 온다. 미국 최대 스포츠인 풋볼(Football 미식축구)은 8월 중순부터 3번의 예비 게임을 시작으로 18주 동안 17게임을 이어간다. 올해도 미국의 고향인 콜로라도 덴버의 브롱코스 팀의 스케줄을 찾아 달력에 입력하며 그 기대감으로 약간 들뜬다.
작년의 형편없던 기억은 잊자.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한다. 새로운 쿼터백을 뽑은 감독의 선구안에 잔뜩 기대를 걸고 게임을 시청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같이 일하는 미국친구와 내기를 하기로 했다. 브롱코스가 이기면 내가 5불을 따는 것이고 브롱코스가 지면 내가 그에게 5불을 지불하는 형식이다. 게임이 끝날 때마다 게임의 승패에 따라 각자 이름 아래에 5불짜리를 붙인다. 매 게임마다 5불이 걸려 있으니 목청을 높이고 손뼉을 치며 응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을 하면서 TV시청을 하느냐고 붇는다면 ‘그렇다’라고 답을 한다. 게임을 시청하는 것이 어쩌면 매장을 찾아 주는 고객들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 같은 것이다. 대형 TV에는 늘 스포츠가 켜져 있고 손님들이 술을 고르는 동안 옆을 지나며 도와줄 것은 없는지 묻거나. 게임 이야기를 슬쩍 띠우면 고객들은 이 자그만 동양 할머니가 풋볼을? 하는 얼굴로 답을 한다. 대화가 이어지고 쇼핑 시간도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매장 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구매력이 올라가는 것은 상술 101에 나오는 진리.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것이지만 풋볼에 관심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가끔 그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고객들이 한 마디씩 거들며 친숙하게 되고 단골이 되는 과정. 이 작은 관심이 서비스라는 차원이고 이런 것들을 통해 사람 사는 이야기를 엮어 갈 수 있다면 너무 큰 의미를 두는 것일까.
지난 3년 동안 시즌이 끝난 후 결과를 보면 늘 내가 조금 졌다. 그도 그럴 것이 덴버의 브롱코스는 지난 몇 년 동안 거의 꼴찌에 머물러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하더라고 일편단심 덴버 팀을 응원하는 이유는 미국에서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강릉에 있을 때는 ‘강릉고’ 야구에 관심이 가고, 이곳에 있으면 덴버 팀에 온통 시선을 빼앗긴다.
어떤 할머니의 요상한 취미라는 시선은 거두어 주기 바란다. 나이가 들었다고 관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때론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평생 좋아했던 야구나 미국에 오면서 알게 된 풋볼은 게임 그 자체로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작은 것들에 흔들리지 않고 사소한 것에 흥분되지 않을 나이라고 혹자는 말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즐겁고, 재밌고, 신나는 감정 표현의 솔직함, 버리고 싶지 않다.
이번 주말엔 올해 시즌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예비 게임이다. 마침 그가 응원하는 애리조나 카디널과 내가 응원하는 덴버 브롱코스의 게임이다. 기대만으로도 달뜬다. 일요일 오후 성당에서 돌아와 브롱코스 유니폼의 티셔츠로 갈아입고 가게로 갈 것이고 그는 카디날 유니폼을 입고 일을 오겠지. 오후 내내 가게 안에 가득할 떠들썩한 함성과 손뼉이 손님들의 시선을 잡을 것이고 공을 던질 때마다, 한 야드씩 전진할 때마다 브롱코스 와 한마음이 되어 마음을 졸이기도 하고 흥분하기도 하며 웃음 가득한 오후를 보낼 것이다.
함성 속에서 피어날 소소한 행복. 주말을 기다리는 콜로라도 할머니의 얼굴엔 감사한 세월의 주름이 하나 더 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