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찬양합니다’ 신부님의 기타 반주로 시작된 대림 피정. 50여 명의 신자들이 친교실에 모였다. 반짝이는 불빛 아래의 성모님과 아기 예수의 그림. 바오로 사도의 이콘을 테이블 앞에 놓고 피정을 인도하는 신부님. 젊은 여성 신자들의 모임인 아가페 회원들은 따로 모여 복음 성가를 이끈다. 성경책을 펼치고 테이블 위에 놓인 악보들과 오늘의 순서를 보며 오랜만에 성경을 펴, 함께 읽을 페이지를 찾는다.
대림. 영어로 Advent, 도착을 의미하는 라틴어 어드벤투스(Adventus)를 번역한 말이다.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가톨릭 교회력으로는 전례의 새해 첫날이기도 하다. 바오로 사도는 신약 성경에서 만날 수 있는 최초의 신학자이다.
첫 번째 주제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 바오로. 유대교인이었던 바오로 사도는 처음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했지만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을 듣고 회개하여, 개종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가 되었다. 다 함께 사도 신경을 읽으며 초대교회의 모습과 신자들의 모임인 공동체를 만날 수 있었다. 성경을 읽는 것이 곧 기도라는 말씀. 그동안 얼마나 무심히 성경책을 미뤄두고 있었던가 싶다. 작년 봄 시편을 필사했던 이후, 성경 책은 나의 책장에서 고스란히 먼지를 뒤집어쓴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가 겨우 오늘에야 먼지떨이를 했다.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 신실한 기도는 또 언제 해 보았던가? 나의 기도는 늘 구복 기도였고 나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단편적인 것들이었다. 타인의 행복과 누구의 평화를 위해 기도 했던 것은 또 언제였던가?
이어 ‘내 맘에 오시는 주’ 찬양. 주님은 어떻게 내 마음으로 오시는지 알려준다. ‘내가 사막 가운데 있을 때, 광야에서 길을 잃어도…’ ‘평화와 사랑을 부어주시는…’ 이렇게 사랑과 평화를 부어 주시는 하느님 품에서 파스카의 신비를 만난다. 간호사를 퇴직하고 읽고 쓰는 일을 주로 하며 지내는 요즈음 나의 모습. 역사 안에서 생명의 또 다른 이름인 시간, 이라는 말씀. 그 시간 안에서 만나는 나의 성소는 무엇일까? 긴 묵상이 필요한 명제이다. 바오로 사도는 숙성과 담금질의 과정을 걸쳐서 안티오키아로 파견되었다. 이후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처음 불리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교회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한 과정인 것이라는 말씀.
이런 과정의 연장선에서 볼 때, 교회의 역사는 작은 본당 공동체로 이어지고 있다. 본당 안에서 만나는 각자 다른 모습의 우리들. 다름을 인정하고 가지의 지체로써 영양을 공급받으며 세상의 향기와 영향력을 나누는 우리들. 그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을 만날 때만 우린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사랑은’이라는 성가가, 우리들이 지향하는 바를 가장 섬세하게 나타내 주는 것 같다. 이 생활성가를 노래한, 최현숙 아가다는 부산교구의 신자이며 앞을 볼 수 없는 분이란다. 그래서 더욱 섬세한 사랑으로 우리들 곁에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는 늘 내 옆에 있는 내 공동체 안의 형제자매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나를 고집하지 않는 일’이 그렇게 쉽던가?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로 이어진다. 예수님 탄생에는 인류가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날밤 모든 여관은 만원이었고, 비어있던 곳은 구유, 한 곳이었다. 동물들이 그들의 자리를 내어 준 것이다. 목자들이 제일 처음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보았다. 가장 비천한 곳에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 우리는 지금 깨어 기다리고 있는가? 마음속에 있는 미움, 용서받지 못함, 억울함 그런 마음들을 그분을 위해 내어 놓아야 한다. 마음과 물질은 가난한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고, 그럴 때 그분께서 오셔서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이 크다’라고 한다며 말씀을 마쳤다. 12시 반에 시작했던 것이 어둑해지는 4시경이었다.
자리를 이동해 본당에서 성체 조배로 이어졌다. 분향. 좋은 향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고 향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들어 올림 받으신 것을 뜻한다는 설명. 장괴한 채 주님의 모습을 성광으로 바라보며 오늘의 죄를 반성하고 남들에게 좀 더 다가가는 내가 되겠다는 마음 가짐을 다짐해 본다.
피정을 통해 마음에 들어오신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 4주 후면 인류 구원을 위해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 성탄절이다. 우리를 구원해 주실 주님의 탄생을 반짝거리는 장식이나 명쾌한 캐럴 송으로 밀어놓지는 말자. 이 대림기간 동안 진실로 회개하고, 일상을 고백하며, 스스로 녹는 방법을 깨닫고 피정에서 만난 화두를 놓지 말자. 피정이 끝난 성당의 마당엔 어둠이 많이 내려앉았다. 찬바람이 서늘하게 가슴에 불어 들어도 피정으로 덮혀진 가슴은 뜨겁다.
어둠 속에서 촛불은 하나씩 켜지고 조금씩 흔들리며 밝은 빛으로 주위를 밝히고, 기다림은 오래오래 간직될 것이다. ‘내 마음 다해…. 알렐루야’ 찬양은 뜨거운 가슴 안으로 별이 되어 쏟아진다.
이 글을 올릴려고 준비를 하고 있을 쯤 한국의 계엄령 소식을 들었다. 무척 당황 스러웠고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글 올리는 것을 미루어 두었다. 하루가 지났고, 아직 상황의 진의가 파악이 안되었지만 아무일이 없기만을 기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