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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길 위의 시간들 17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와 오후의 먹방

by 전지은


전날에 비해 느긋한 스케줄. 오전은 그야말로 우리들의 자유 시간이고 오후에는 먹방 투어를 하기로 돼 있다. 아침은 탁심 광장에서 사 온 군밤, 남은 과일과 차이 한잔. 기차를 타고 전통 재래시장,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를 가기로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니, 쇼핑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다. 호텔 프런트에서 가는 길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떠난다. 시간 여유가 있으니 이번엔 기차를 갈아타보자는 의견. 구글 맵을 켜고 걷는다. 탁심 광장의 끝에 지하로 내려가는 안내판이 크게 붙어있다. 키오스크에서 표를 사고 귀여운 트램에 오른다. 언덕아래 카라쿄이로 가는 튜엘이라 불리는 1칸짜리 트램. 한 정거장인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소요시간은 단 3분. 트램에서 내려 구도심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시장 앞에서 하차를 하고 입구를 찾아 걸어간다. 오전 시간인데도 벌써 북적거린다.

1461년 오스만 제국 때 조성돼 지금까지 유럽과 아시아의 온갖 산물들 교역의 장소. 지붕이 있는 재래시장. 오래전 인류 문명의 교류 장소였던 실크로드의 서쪽 종착지. 긴 세월 속에서 전쟁과 지진으로 부분 손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복구를 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명. 미로 같은 60개 정도의 통로에 5,000여 개의 상점, 20개의 입구, 비슷한 골목들로 이루어져 길을 잃기 쉽다는 곳. 하루에 25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온다는 전통시장. 호객 행위도 많고, 바자르=바가지, 라고 알려 주었던 가이드의 말이 생각나 조심스러웠다. 완전히 아이쇼핑 만을 생각하고 왔기에 예쁜 상점들을 사진에 담는 일에만 열중했다. 수많은 금은 보석상들. 튀르키예 공예 기술이 발달되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울 수가. 감탄에 또 감탄을 하여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이 많은 보석가게들이 다 상업성이 있을까 싶게 줄지어 있다. 상상 이상의 화려함 속에서 옆으로 이동한다.


알록달록 등들이 진열 돼 있다. 전구와 조명 가게.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색이 고운 스테인드 글라스 등. 모양도 색깔도 다양하다. 튀르키예 사람들이 선호하는 푸른 눈이 그려진 장식들. 아이쇼핑이라고는 했지만 구매욕이 슬슬 발동한다. 전 세계 어디로나 배송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한국말의 호객 행위에 유혹되지 않게 발걸음을 빨리한다.


이어지는 실크 가게. 예쁜 튀르키예 전통 문양의 그릇들. 그중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명품의 짝퉁들을 파는 가게였다. 유명 브랜드의 짝퉁들이 핸드백에서부터 신발까지 없는 게 없다. 여긴 단속이 아예 없는 모양이다. 실내 시장이므로 공기는 탁했다. 가게의 안과 밖에서 피우는 담배. 뛰어다니며 차이를 파는 상인. 그리고 이어지는 호객행위. 채 한 시간도 안되어 눈도 따갑고, 목도 칼칼하다. 기념이 될만한 마그네틱 2개 사들고, 쉴 곳을 찾아봤지만 눈에 띄는 식당도 카페도 없다. 겨우 찾은 골목 끝에서 만난 작은 식당에서 음식을 조금 시키고 차이를 마시고 나왔다. 오후 4시부터 시작할 먹방 코스의 필수 조건이 ‘허기진 배’가 있었기 때문에 요기만 조금 하기로 했다. 미로 같은 시장 골목을 빠져나오니, 길 가에 먹거리 거리가 즐비하게 이어져있다. 동시에, 아~ 여기 있었네, 하며 웃는다.


오후의 만남의 장소인 카라코이선착장(Karokoy Pier)에 도착했다. 앞에 보이는 보스포러스 해안에는 파도가 꽤 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약속 시간을 기다린다. 맥주는 필수. 파도를 안주삼아 마시는 맥주의 목 넘김은 청량함 그 자체이다. 재우 가이드를 만나고, 일정은 우리만 있단다. 파도가 좀 있었지만 먹방이 시작될 카드코이(Kadikoy)로 가는 페리를 타고 이동한다. 페리가 출발 한 곳은 이스탄불의 유럽 쪽, 도착지는 아시아 쪽이라는 설명. 바다 길로 20여분, 대륙의 다른 쪽을 만난다. 유럽을 출발해 아시아에 도착했다. 페리에서 하선한 직후 첫 음식은 고등어 케밥. 카라코이 생선쌈(Karakoy Fish Wrap). 빠싹 구운 고등어에 야채를 듬뿍 넣고 레몬즙을 뿌려 튀르키예 빵인 얇고 부드러운 브레첸에 싸서 준다. 미국식 부리토 같은 모양이지만 내용물이 훨씬 많고 푸짐했다. 맥주를 팔지 않아서 음료수를 마시며 조금 아쉽다. 이럴 때 라거 한잔 마시면 얼마나 더 맛있을까? 식당 사이즈는 작았고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은 이른 시간 때문이라는 설명. 점심시간이나 저녁 시간이 되면 줄을 서야 한단다. 고등어 케밥 하나에 이미 배는 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언덕을 걸어올라 다음 먹거리를 찾는다. 얕은 언덕의 동네 이름은 카드코이. 거리 전체에 빵 굽는 냄새와 달콤한 사탕 내음 비슷한 것, 커피냄새가 가득하고, 활기찬 모습이 서울의 홍대 앞 정도를 연상시키게 한단다. 홍대 앞을 가 본 기억이 까마득한 나는, 이런 약간 업 된 분위기가 홍대 앞인가 싶다.

바클라바와 차이를 파는 가게, 귤루올루( karako Gulluoglu)에 도착했다. 주민들도 줄 서서 먹는다는 맛집. 입구에 들어 서니 한국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이 찾는 곳인가를 증명해 주는 듯. 바클라바는 튀르키예 원조인 과자. 반죽을 얇게 펴 접고 또 접어 몇십 번이나 접어서 구었다고 하니 그 식감 바싹한 건 당연한 일. 달고 파삭하며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피스타치오를 넣은 것이 가장 흔하기는 하지만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을 넣은 것 등 다양했다. 반드시 곁들여 먹어야 한다기에, 차이 한잔도 같이 시켜 먹는다. 카페와 연결 돼 있는 공장 같은 건물. 그 안에서 모든 바클라바를 수작업으로 만들고 굽는단다. 전 세계로 배송도 가능하단다. 로큠도 다양하다. 로큘이라는 과자는 조금 단단한 젤리 식감. 양갱과 비슷하다. 다양한 것들을 안에 넣어 설탕파우더를 입힌 작은 정사각형의 핑거푸드. 작고 귀엽다. 잘게 자른 과일과 견과를 넣었다는데 이것 역시 엄청 달다.


달콤함으로 당분 보충도 했으니, 시장을 좀 걸어도 될 것 같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이 쌓여 있는 골목을 지나고 이번엔 홍합 밥이다. 홍합 껍질 속에 후추와 각종 향신로 양념이 된 찐밥을 넣어서 하나씩 건네준다. 홍합을 엄청 좋아하는 나는 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퀴르키예의 대표적 길거리 음식. 인파 가득한 골목에 서서 찜솥 앞에서 하나씩 받아 먹는 맛. 말 그대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배가 불렀지만 참 맛있다. 또 다음 장소로 옮겨서 계속 먹을 꺼란다. '와우~ 대박~~ ' 소리가 절로 나온다.


선물가게 같은 잡화점 거리를 지나고 도착한 곳은 으슬락 버거집. 으슬락 버거는 젖은 햄버거를 말한다. 1934년부터 으슬락 버거를 만들었다는 가게. 사이즈는 작아서 미니 햄버거만 했다. 심플하게 햄버거 패티를 빵 안에 넣고 토마토소스에 절여 준다. 이게 왜 맛있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포화 상태이니 무엇을 먹었어도 똑같은 반응이었겠지. 한 입 베어 물고는 나머지 것은 미안 하지만 쓰레기 통으로.


다시 얼마를 걸어 꿀 가게 앞이다. 달콤한 냄새가 가게 안에 가득하다. 소나무 꿀과 꽃 꿀이 있다. 소나무 꿀은 벌집 채 조금씩 잘라서 맛을 보여 준다. 너무 달지 않은 그야말로 꿀맛. 입에 씹히는 맛도 제법 괜찮다. 작은 잔의 요거트에 꾸덕한 꿀을 올려 건네주며 그것도 시식해 보란다. 역시 맛있다.


음식도 많이 먹었고 거리 구경도 꽤 했으니 쉬어야 할 시간.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내려 준다는 카페에 앉았다. 아이스크림과 커피와 바클라바를 테이블 위에 놓고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가이드와 이야기도 이어간다. 평생 처음해보는 먹방투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골목에는 어둠이 내리고, 먼 도시에는 하나 둘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가이드가 가르쳐 준 페리를 타고 다시 유럽 쪽으로 돌아온다.


이스탄불의 아시아 사이드는 젊음의 열기가 가득했고, 여행객보다는 현지인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유럽 쪽에 외국인 관광객 인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면, 아시아 쪽은 열정과 맛과 멋이 함께 공존했던 느낌. 같은 도시 안에서도 느낌이 사뭇 다른 두 곳. 여행은 몰랐던 곳의 새로운 사실을들을 가슴에, 머리에 남겨 주며, 이어지는 시간들이다.


숙소로 돌아와 일찍 쉬기로 한다. 다음 날 아침 출발 시간은 새벽 5시.

오후 내내, 거의 5시간 동안 먹기만 했으니 몇 파운드나 더 쪘을까? 제대로 튀르키예의 음식을 만나, 음식에 대한 설명과 역사를 알며 맛 하나 하나를 즐겼다. 음식도 좋은 인문학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튀르키예 어느날 오후. 여행의 또 다른 부분인 먹는 재미, 그 소소한 행복 가만히 안는다.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아잔 소리 들으며 분홍색 하늘로 지는 이스탄불의 밤은 오늘도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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