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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길 위의 시간들 21

핫 에어 볼룬(Hot Air Balloons)을 타다!

by 전지은


평지를 벗어 난 산길이 꽤 험하다. 가도 가도 이어지는 돌산들. 이런 곳에 마을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쯤 눈앞에 나타난 도시. 해는 이미 돌산의 한 모퉁이로 기운다. 마을 안쪽 깊숙이 들어가 자리 잡은 숙소. 제법 근사하고 깨끗하고 웰컴 드링크도 준비돼 있다. 그야말로 돌산 안에 갇힌 호텔에서 방 배정을 받고, 느긋하게 저녁식사를 한다.


다음날 아침 새벽 4시에 핫 에어 볼룬을 타러 간단다. 우재 가이드는 우리들에게 ‘기후 요정들’이라 치켜세우며, 볼룬을 띠울 수 있는 승인이 났단다. 날씨에 상당히 민감한 핫 에어 볼룬. 누구에겐 가는 인생의 버킷리스트였을 수도 있는 이벤트.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승인이 않나 어떤 땐 일주일 내내 못 뜰 때도 있단다. 다음날을 위해 일찍 쉬기로 한다. 이도시,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언제부터 이렇게 열기구가 유명해졌을까?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일출의 명소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오기 시작했고, 더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돌산을 올랐고, 사람이 올라가기에는 제한이 있어서, 열기구를 타기 시작했다는 것. 문헌에도 정확히 시작한 연도가 기록돼 있지 않다. 최소한 이 삼 십 년 전부터일까,라는 막연한 생각. 핫 에어 볼룬은 튀르키예가 세계의 여행객들을 모으는 좋은 이벤트인 것 같다. 자연경관을 내려다보며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실현해 보는 이색체험. SNS가 발달하며 세계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아, 튀르키예를 오면 반드시 해 봐야 하는 것, 으로 정평이 나있다.

처음 튀르키예 여행을 우리들의 1달 여행의 맨 끝에 넣었을 때, 후배님은 열기구는 꼭 타야 한다고, 했었다. 물론 그중 몇은, ‘난 안 탈래, 높이 올라가면 후덜덜~’ 타고 싶은 사람만 타기로 했지만 막상 그 시간이 되니 6명 모두가 열기구를 탄단다. 언제 다시 카파도키아에 올 수 있다고,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등의 쓸데없는 이유를 붙이며. 그냥 타면 되지, 무슨 이유가 그리 많냐며, 웃는다.

기후관제청이 전날 오케이를 하고, 뜨는 당일 아침에도 다시 한번 체크를 해 날씨가 기구 뜨기에 최적인 것을 확인야만 한단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너무 더워도, 기구가 뜨지 않는단다. 그래서 인생의 버켓리스트에 들어가는 걸까?

얇은 잠바를 챙겨 입고, 어두운 새벽길을 나선다. 호텔까지 픽업을 온 벤에 오른다. 벤의 기사님은 울퉁불퉁한 곳을 달리며 엔진이 타는 듯한 냄새도 나고 엄청 흔들린다. 몇 번인가 벤을 세우고 열심히 전화를 걸었고, 열기구 앞에 차를 세웠다. 수많은 벤과 열기구들이 어둠 속에서 만난다. 열기구를 바로 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 하는 경험. 그렇게 클 거라는 상상을 못 했었는데. 20여 명이 한 개의 바구니 안에 들어간다. 주의사항을 듣는다. 그때 한쪽에서 울고 불고 안 탄다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일행 중의 한 명인 초등 1년생이 무섭다며. 그때 한 건장한 청년이 꼬마친구를 번쩍 안아, 바구니 속에 거의 던져 넣는다. 이어 불이 세게 붙으며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 이동처럼 볼룬이 하늘로 뜬다. 와아~~~ 함성이 동시에 터지고, 꼬마친구의 울음소리는 사라졌다.


이런 장관을 내 눈 앞서 볼 수 있다니… 감탄에 감탄이 이어진다. 먼 동쪽 하늘에서는 동이 트기 시작한다. 분홍색 하늘과, 시선 아래 기암괴석의 돌산과, 손에 잡힐 듯한 옆의 형형색색의 열기구들. 오르락내리락 동 서쪽, 남북으로 흘러가듯 움직이고, 돌산 벽에 닿을 듯 가까이 가기도 하는 볼룬. 열심히 풍경을 사진 속에 담는다. 시간이 지나고 오늘의 이 시간을 돌아보면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질 사진들. 45분쯤 손에 잡힐 듯한 풍경 속의 하늘을 날다가 서서히 내려온다. 날은 이미 밝았다. 아쉽다. 좀 더 멀리 가거나 좀 더 떠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내리라는 신호가 떨어졌고, 우리는 일제히 바구니 안을 잡는 동작을 하며 무사히 착지를 했다. 한 명씩 바구니에서 내리고 하늘이 떠나갈 듯 울었던 꼬마친구는 재밌었다며 활짝 웃는다.

그룹들끼리, 짝들을 찾아서 인증샷을 찍고, 샴페인을 나누어 마시고, 열기구를 탔다는 증서 하나씩을 받는다. 집으로 돌아가면 쓰레기통으로 사라질 종이 한 장이지만, 그 시간에는 아주 중요한 서류처럼 양손으로 받아 든다.


숙소로 돌아와 아침식사 후, 간 곳은 데린쿠유 지하도시(Derinkuyu/ Goreme National Park& the Rock Sites of Cappadocia). 내려가는 길이 좁고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만큼 낮다. 실제로 존재했던 지하 11층, 지하 85미터 깊이까지 이어진다. 한때는 2만여 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단다. 지하도시는 미로 같은 통로를 따라 주거지역이 마련됐다. 곡물창고, 와인 만드는 곳과 보관소, 식당, 학교와 예배당, 부엌 등등의 생활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1963년, 재발견 당시 한 농부가 닭을 풀어놓고 키웠는데 자꾸 없어지는 것을 알게 되어 한번은 닭을 따라갔더니, 지하 동굴로 사라지더란다. 따라가 보며 재발견된 곳, 이후 중요 관광지로 가꾸어지며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직경 1미터 규모의 환기구가 도시를 수직으로 관통하고 있어, 공기와 빛이 지하로 유입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기원전 7-8세기 프리카인들이 처음 터널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등 다양한 시대에 종교적 박해를 피해 기독교 인들이 은신처로 사용했단다.

옛사람들의 건축기술은 지상이나 지하에서나 경이롭기만 하다.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이길래, 이렇게 깊은 지하까지 숨어들어, 탄압에 맞서며 지키려고 했을까? 불이 켜져 있는 곳만 돌아봤어도 길은 계속 이어진다. 1시간은 금세 갔다.

밖으로 나오자 빛의 밝기가 그야말로 환하다. 비둘기마을이라 불리는 곳에 멈추었다. 지상의 괴암에 구멍을 뚫고 동물도 살고, 새도 살고, 나중엔 사람도 살았다는 곳. 지하도시와 비슷한 시도였겠지만, 뚫려진 구멍들은 그야말로 새 집 같다. 그 크고 작은 구멍들 안에는 지금도 많은 비둘기들이 무리 지어 살고 있단다. 그 앞의 사진 명소라는 곳에서 우재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하며 사진 한 장.


이어 파샤바 공원(Pasabag Park ). 산타마을이라고도 불리는 기암괴석 공원. 송이버섯과 비슷한 바위가 펼쳐져 있는 골짜기. 화산, 바람, 시간이 만들어낸 장관. 스머프처럼 생긴 돌에. 세명의 미인이라 불리는 멋진 돌. 낙타모양. 멀리 보이는 것은 예수. 더 먼 곳에는 성모마리아의 기도 등등. 이름도 잘도 붙인 기암괴석들. 며칠 동안 보고 느끼는 천혜의 땅, 튀르키예. 넓은 나라가 갖고 있는 자연들이 부럽다. 대한민국도 이 정도로 넓었더라면… 미국의 역사는 아직 너무 짧아 이런 것들이 발견되지는 않겠지?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더위를 피해 카페에 앉는다.


무조건 아이스 아메리키노를 마셔야 할 것 같은 폭염. 바로 앞에서 아이스가 떨어졌다. 이런, 하는 수 없이 찬 레모네이드를 주문 해 마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괴레메(Goreme) 시내에서 하차. 예쁜 가게들을 기웃 기리며 사고 싶은 것들을 찾아본다. 어디나 비슷비슷하게 생긴 기념품들. 핫에어볼룬이 가득한 마그네틱, 지하도시가 그려져 있는 그림엽서, 튀르키예 심볼인 푸른 눈의 작은 그릇들. 욕심 같았으면 잔뜩 사고 싶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아마존에 다 있을 거라며, 더 저렴할 거라며 욕심을 접는다.


돌산 사이 길을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잠시 술가게에 들렀다. 맥주 6캔을 사서 돌아온다. 각방에 2캔씩 주고 방으로 들어와 땀을 식힌다. 후배님의 몸 상태가 다시 안 좋단다. 열도 나고. 또 다른 후배님은 기침을 꽤 자주 한다. 마스크를 건네주며 뜨거운 티를 계속 마셔보라고.


저녁이 되고, 카파도키아 야경을 가는 욥션, 연락을 받았다. 앤 네만 간단다. 우리는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들을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새벽부터 움직였던 탓에 많이 피곤하다. 다음날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이며, 튀르키예 수도인 앙카라로 간다.


앙카라, 튀르키예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도시. 이스탄불이 외세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에 비해, 내륙의 가운데에 있으면, 더 안전할 것 같아, 1923년 터키공화국 수립과 함께 수도를 옮겼단다. 튀르키예 옛사람들의 결단과 국민의 화합이 부러운 건 왜일까?


기암괴석 숲 속의 하루가 열기구를 타고 나르며, 요정이 되어 하늘을 나르는 꿈을 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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