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그리도 많은 쓰레기를 믿는 걸까?
죄책감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를 믿는다. 가족이나 친구, 이웃 사람이 던진 부정적 한 마디가 그날의 행복과 환희를 한순간에 망친다. 육체적 질병이 있는 곳에 죄책감이 있을 공산이 크며, 죄책감은 우리의 내면이 본디 천진하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우리는 왜 그리도 많은 쓰레기를 믿는 걸까?
-데이비드 호킨스, <놓아 버림>-
나를 오랫동안 괴롭혀 온 죄책감을 이제 놓아주려 한다. 일정 부분 일리가 있고 무엇보다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니 늘 마음에 걸렸다. 이젠 안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라는 것을. 들은 대로 따르지 않아도 나는 불행해지지 않을 것임을. 저주가 실현될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됨을. 정해진 운명도 내가 하기 나름임을 안다.
나는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며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모진 말로부터 나를 지키기 어렵다면 나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을 해도 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읍소하고 호소하고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내 안의 내면 아이는 싸늘한 반응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슬퍼하고는 했다. 이제는 내 인생에 책임을 지면 되는 다 큰 어른임을 내면 아이에게 끊임없이 일깨워야 한다. 언젠가는 이겨내야 할 일이라면 더 늦기 전에 시도해 보자. 용서받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남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더 단단해져야 하는 부분은 더 단단해지고 놓아버려야 하는 부분은 놓아버려라.
가끔 힘들고 외로울까 걱정되는가? 그렇지 않을 거라고는 못 해주겠다. 맞다. 때때로 힘들고 외로울 것이다. 쓰레기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은 쉽게 금방 되지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질 거다. 결국엔 다 괜찮아질 거다.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지킴과 놓아버림임을 기억하자.